[서울시장 후보 인물탐구①]나경원 누구인가

기사등록 2011/10/13 10:29:33 최종수정 2016/12/27 22:52:57

학창시절 모범생…주류로 '탄탄대로'

【서울=뉴시스】박주연 기자 = 10·26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스타 정치인이다.

 그는 1963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여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사시 24기에 합격했다. 이후 부산과 인천,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활동하다 16대 대통령 후보 특보로 발탁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해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나서 재선에 성공했다.

 초선 의원일 때는 당 대변인, 대통령 후보 대변인 등을 거치며 활발한 활동을 벌였고, 18대 때는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재선임에도 불구하고 최고위원, 서울시장 후보 등으로 나섰다.

 ◇어린시절 꿈 '정치가'…부유한 집의 모범생

 나 후보의 부친 나채성씨는 화곡중·화곡고·화곡여상을 운영하는 홍신학원의 설립자다. 나 후보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고 모범생으로 성장했다. 

 그는 자서전 '세심'에서 "중학교 때 성적순으로 1등이 반장을 하던 시절이라 나도 반장을 했다"며 "나는 수재라기보다 노력파"라고 밝혔다. "요즘 신조어로 '공신'(공부의 신)이었던 것은 사실"이라고도 했다.

 그는 "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남들보다 결코 적지 않은 노력과 세심함으로 정성을 다해왔다"며 "곰처럼 미련했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원칙을 중시하는 공부가 가장 정직한 공부였다"고 밝혔다.

 학창시절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그의 어린시절 꿈은 '정치가'였다.

 나 후보는 자서전 세심에서 "나의 어릴 적 한때 꿈은 정치인"이라며 "언젠가 어머니가 피아노를 배우라고 했을 때 '정치가가 될 건데 피아노는 왜 배워요'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80년대 비운동권…연수원 별명 '나징가제트'

 그는 1982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같은 당인 원희룡·조해진 의원, 서울대 조국 교수 등이 그의 동기생이다. 학생운동으로 나라가 들끓던 때였지만 그는 비운동권이었다.

 나 후보는 "서울대 법대생끼리 재미삼아 나중에 절대로 정치할 것 같지 않은 학생을 뽑으면 항상 내가 1위였다"며 "내가 정치인이 될 지는 나 자신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1988년 남편 김재호 판사와 결혼했고, 1992년 34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부산과 인천, 서울행정법원 판사로 활동했다.

 나 후보는 임신 상태에서 사법연수원을 다니면서 '나징가제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마징가제트처럼 무최와 같은 체력으로 잘도 앉아서 끝까지 공부한다고 주위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그는 "내 인생을 한 편의 영화로 본다면 졸음이 오는 잔잔한 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나는 이 잔잔한 영화를 찍기 위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모른다"고 밝혔다.

 ◇이회창 정책특보로 정계입문…10년도 안돼 서울시장 후보

 나 후보는 2002년 당시 대권후보였던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정책특보로 정계에 입문했다. 여성판사의 멘토격이었던 자유선진당 이영애 의원의 권유가 결정적이었다.

 그는 한나라당의 대선 패배 이후 잠시 변호사로 활동했지만 2004년 비례대표로 첫 배지를 달았다. 이후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당 대변인과 이명박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뛰어난 미모와 절제된 화법으로 '스타 정치인'의 반열에 올랐다.

 나 후보는 18대 총선에서 승리, 서울 중구에서 두번째 배지를 거머쥐었다. 이회창계, 강재섭계로 분류됐던 그는 18대 국회에서는 친이(이명박)계로 분류됐다.

 미디어법 처리 당시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간사로 활동하면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이끌어냈고, 대중적 인지도를 기반으로 두 차례에 걸쳐 최고위원을 지냈다.

 올해 들어서는 당 공천개혁특위 위원장을 지내며 '상향식 공천 개혁'을 주도했고, 쇄신·소장파 의원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에도 참여했다.

 ◇다운증후군 딸아이 키운 슈퍼맘

 미모와 재력, 능력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것 같아 보이지만 그에게는 아픔도 있다. 그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을 키우며 사회의 차별을 경험했다.

 나 후보는 "출산 후 이틀 만에 알게 된 첫아이의 다운증후군. 평생 흘릴 눈물의 절반을 이때 흘렸다"고 언급했다.

 또 "큰딸의 학교 문제로 곤란을 겪고 난 후, 사회적 약자가 인간적 존엄성을 존중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면, 법이나 제도의 변경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1963년 서울 출생 ▲서울여고, 서울대 법대 졸업 ▲사시 24기 ▲부산지법, 인천지법, 서울행정법원 근무 ▲한나라당 제6대 대통령 후보 특보 ▲제17대 국회 한나라당 대변인 ▲제17대 이명박 대통령 후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대변인 ▲제6정조위원장 ▲국회 문방위 한나라당 간사 ▲한나라당 최고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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