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세영 교수 성학, 풋고추와 조갑지

기사등록 2011/09/23 07:11:00 최종수정 2016/12/27 22:46:59
【서울=뉴시스】안세영 교수(경희대 한의대 신계내과학) '성학'<38>

 춘추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은 궁중의 여인들에게 남장(男裝)을 시켜 놓고 완상(玩賞)하는 별난 취미가 있었다. 또한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을 흉내 내지 못하도록 ‘온니 인 마이 킹덤 가든’을 외치며 궁 밖의 남장 여인은 모두 처벌하라는 금령까지 내렸다. 전제주의 시대였기에 망정이지 요즘 같으면 일종의 성도착자로 낙인찍혀 온갖 비난을 받았음은 물론 자리까지 위태로웠을 것이다.

 영공의 이런 별난 성벽(性癖)에 일침을 가한 재상 안자(晏子)의 일갈(一喝)이 바로 ‘양두구육(羊頭狗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유래는 몰라도 뜻은 익히 알 것이다. ‘양두구육’이란 고사성어는 현옥매석(衒玉賣石: 옥을 진열해 현혹케 하고 돌을 판다)과 더불어 겉 다르고 속 다른, 소위 ‘표리부동(表裏不同)’을 꼬집을 때 많이 사용된다. 그런데 남녀의 성별에도 문자 그대로 표리부동, 양두구육인 경우가 있다.

 혹 영화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당장 동성애를 주제로 한 문제작 ‘크라잉 게임(The crying game)’을 떠올릴 것이다. 침대에 이르러 옷을 벗기면서도 여자인 줄 알았다가 국부에 불거져 나온 남성 심볼에 큰 충격을 받고 심하게 구토하던 주인공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리라! 또한 ‘투씨(Tootsie)’나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 아울러 ‘가슴달린 남자’라는 방화도 모두 표리부동(?)을 소재로 삼았는데, 이런 영화의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대개 외모만으로 남녀를 구분한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일 게다.

 영화 속에서 뿐 아니고, 또 외국의 경우도 아닌 우리나라에서도 요즘에는 단순히 외모만으로 남녀를 구별하기는 어려워졌다. 거리를 오가다 보면 긴 머리에 귀걸이를 한 남자도 많고, 숏 커트에 바지 입은 여자는 더욱 많으니, 남녀 구별이 일별(一瞥)로는 전혀 곤란할 때가 많지 않던가? 이렇게 표리부동의 의심이 가는 사람들은 시쳇말로 ‘벗겨 보면 안다’고 하듯 남녀의 구별은 흔히 음경이나 질(膣) 같은 외생식기가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물론 극히 일부이지만, 외생식기만으로 구분이 곤란할 때는 고환이나 난소 같은 내생식기, 더 나아가 XX나 XY같은 성염색체의 조합을 남녀 판별의 잣대로 이용해야 한다. 겉 다르고 속 다르지 않은 진실한(?) 남녀가 되기 위해서는 유전적 성의 기초 위에 남자는 남자의, 여자는 여자의 내·외생식기를 갖추도록 올바른 성의 분화가 이뤄져야 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말이다.

 우리는 앞서 인간 개체는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의해 태어나고, 남녀라는 성별의 결정은 수정의 순간 성염색체의 조합에 의해 이뤄짐을 파악했다. 또 성별의 결정 이후에는 X염색체 상의 고환성 여성화 유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도 이해했다. 이것만으로 끝나면 좋으련만, 남성이 남성다워지고 여성이 여성다워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른바 내·외생식기의 분화라는 또 다른 성의 분기점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껏 불분명한 점이 매우 많지만 내·외생식기의 성분화는 대개 다음과 같다고 여겨진다.

 XY염색체의 결합으로 성별이 일단 남자로 결정되면, 태아는 남자다워지기 위한 행동을 개시한다. 즉 미분화성선(未分化性腺)이 남성으로 분화되고, 남성으로 분화된 성선인 고환은 당장 뮐러관(Müllerian duct) 억제인자와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을 분비하기 시작한다. 앞서 설명했지만 남성의 고환은 정자를 만드는 정세포와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는 간질세포(Leydig cell)와 지주세포(Sertoli cell) 3가지 세포로 구성된다. 엄마 뱃속에서, 또 출생신고도 하기 전에 정자를 만들 필요는 없기에, 태아기의 고환에서는 간질세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을, 지주세포에서는 뮐러관 억제인자를 분비한다.

 아직 성적으로 미분화된 초기에는 남녀 모두 볼프관(Wolffian duct)과 뮐러관을 좌우 한 쌍씩 갖추고 있다. 볼프관은 후에 부고환, 정관, 정낭 등 남성의 수관계(輸管系)가 되는 원기(原基)이고, 뮐러관은 후에 난관, 자궁, 질의 일부 등 여성의 수관계가 되는 원기다. 따라서 XY염색체의 태아가 호적에 남자아이로 신고되려면 당연히 볼프관의 발달은 촉진하고, 뮐러관의 발달은 억제해야 한다. 바로 이런 행동을 취하려고 XY염색체의 태아는 ‘라이터돌’만한 고환에서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이다. 즉 고환의 지주세포에서는 뮐러관 억제인자를 분비해서 뮐러관의 발달을 억제함으로써 난관과 자궁으로의 분화를 막는 한편, 간질세포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해서 볼프관의 발달을 촉진함으로써 부고환, 정관 및 정낭으로의 분화를 채찍질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XY염색체의 태아는 남성으로서의 내생식기를 완성시켜 나간다.

 외생식기의 분화도 똑같다. 초기에는 남녀 모두 생식결절(음경귀두나 음핵으로 분화), 생식융기(음낭이나 대음순으로 분화), 요도원기(남성의 전립선과 쿠퍼선, 여성의 바르톨린선과 스킨선으로 분화) 등을 갖추고 있다. 그런데 X와 Y라는 염색체의 결합으로 남성으로의 분화가 착수되면 성선이 고환으로 분화돼 내생식기가 형성되는 한편, 또 여기서 분비되는 호르몬에 따라 생식결절과 생식융기 등이 태생 10주경이 되면 풋고추와 뿡알이라는 이른바 남성의 외생식기로 발육하는 것이다.

 혹 예리한 독자라면 테스토스테론과 뮐러관 억제인자를 모두 호르몬이라 칭했음에 의아할 것이다. 즉 테스토스테론은 잘 알려진 호르몬임에 틀림없는데 뮐러관 억제인자는 문자 그대로 인자가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몇 장 더 읽어 나가면 이런 의문은 자연스레 해소될 테니까….

 XX염색체의 결합으로 성별이 여자로 결정되면 태아는 여자다워지기 위한 행동을 천천히(?) 시작한다. 즉 태생 11주경에야 미분화성선이 여성으로 분화돼 난소가 형성되기 시작하니, 남성의 성선인 고환이 성분화되는 것과는 시간적으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렇게 여성이 남성보다 늦어지는 것은 성적으로 미분화된 성선원기에서 난소가 형성되는 과정이 극히 자연스럽게 일어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여성의 태아도 유전적으로 처음에는 뮐러관과 볼프관을 좌우에 한 쌍씩 갖추고 있다. 뮐러관은 알다시피 여성의 수관계가 될 원기이므로, 여성에게는 당연히 뮐러관 억제인자가 분비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뮐러관이 발달해서 자궁, 난관, 질의 일부가 됨으로써 난소와 함께 내생식기의 골격을 형성한다.

 한편 남성의 수관계가 될 원기인 볼프관은 테스토스테론의 도움이 없기에 더 이상 발달하지 못하고 퇴화돼 단지 흔적기관으로만 남는다. 이런 내생식기의 자연스런 분화에 이어서 태생 20주경 음핵, 음순 등 이른바 여성의 외생식기가 형성되면 조갑지의 완연한 모습이 이뤄진다.

 이렇게 최초 성의 분기는 XX나 XY같은 성염색체로 결정되지만, 수정 시 유전적 성이 결정됐더라도 이후의 신체적 성 분화가 반드시 뒤따라야만 정상적인 남녀로 태어날 수 있다. 우리는 자식을 한 둘 낳아 길러본 사람들이 ‘무자식 상팔자’라 이야기하는 것을 자주 듣는다. 또 태산만한 배를 움켜쥐고 뒤뚱거리는 임신부들이 힘들어서 빨리 낳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그래도 뱃속에 담고 있을 때가 훨씬 좋다는 말도 흔히 듣는다.

 미혼 남녀들은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겠지만, 하여튼 성의 분화도 엄마 뱃속에서 일어나는 생식기의 분화는 수월한 편이다. 탄생 후의 성분화는 더욱 복잡하기 때문이다. 2차 성징으로 요약되는 남녀의 신체적 차이야 눈에 빤히 보이는데 뭐가 그리 복잡하냐고 생각하겠지만, 성징의 발현은 물론이려니와 한 걸음 나아가 남성과 여성의 성 격차, 정신행동 등의 성차(性差)에 이르면 사실 온갖 의문투성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뇌의 성 분화 등과 같은 새로운 학설도 등장한다. 이 문제는 너무 복잡하므로 차차 이야기하고, 앞서 살펴본 남녀 생식기의 분화만 간단히 요약한다.

 혹 경험적으로(?!) 남성의 음경과 여성의 클리토리스(clitoris)는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조상이 똑같은 생식결절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정상적인 태아는 엄마 뱃속에서 비교적 수월한 내·외생식기의 분화를 거쳐 표리부동하지 않은 진실한 남녀로 세상의 빛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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