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티아라의 새 싱글 ‘롤리폴리’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1970~80년대 디스코풍 음악과 의상, 영화 ‘써니’ 콘셉트를 차용한 뮤직비디오, 그리고 일본진출 쇼케이스 소식 등 화젯거리가 워낙 많았다. 곡 자체도 쉽고 단순해 여름음악시장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롤리폴리’는 지난 14일 M.net ‘엠카운트다운’에서 1위를 차지하고, 가온차트 7월 둘째 주 차트에서도 3위를 차지해 음원판매와 인기도 면에서 전작 ‘야야야’의 실패를 단숨에 만회했다.
그런데 ‘롤리폴리’는 프로모션 과정에서부터 팬들로부터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킨 싱글이기도 했다. 드라마식으로 구성된 뮤직비디오의 댄스 시퀀스에서, 멤버 지연은 전체 댄스 포메이션의 80% 이상에서 센터에 섰다. 거의 ‘지연과 백댄서들’로까지 보일 정도다. 근래 이 정도 ‘절대 센터’ 포메이션은 아이돌그룹 안무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러면서 ‘무리한 지연 푸시’가 도마에 올랐다.
흥미로운 건, 현재 지연은 티아라 내에서 딱히 ‘강세’라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각종 스캔들에 시달리다보니 이미지 타격이 심했다. 대신 티아라 내 인기 중심은 TV드라마 등을 통해 인지도를 대폭 높인 은정에게 돌아갔고, 소연 등 여타 멤버들에 대한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그런 상황임에도 티아라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 측은 지금껏 지연을 단 한 번도 센터 자리에서 하차시키지 않았고, ‘롤리폴리’에 이르러선 심지어 ‘절대 센터’ 자리까지 맡겼다는 얘기다. 아이돌 콘텐츠 판매의 핵심이 되는 센터 설정에 있어, 코어콘텐츠미디어 측은 어째서 이런 뚝심 아닌 뚝심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물론 회사 내 사정과 분위기를 일일이 다 알 수는 없어 확답하긴 어렵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같은 전략이 어색한 게 아니라는 점 정도는 분명하다. 무식한 돌쇠 짓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미 성공사례가 존재하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벤치마킹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올바른 선택이었다는 점에선 이견의 여지가 없다.
일본 최정상 걸그룹으로 국내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AKB48 경우가 대표적 유사사례다. AKB48 소속사 오피스48 측은 AKB48 결성 당시부터 멤버 마에다 아츠코를 꿋꿋이 센터로 위치시켰다. 그러면서 마에다를 일약 AKB48의 얼굴로서 키워냈다. 마에다의 센터 독점에 팬들의 비난이 일어도 상관없이 모든 댄스 포메이션의 중심에는 마에다를 세웠다. 뮤직비디오도 철저히 마에다 중심으로 연출했다.
그러다 오피스48 소속 멤버들 인기순위를 매기는 총선거 2회째에서 마에다가 멤버 오오시마 유코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을 때도 “그저 17번째 싱글의 센터를 정하는 행사였을 뿐”이라 얼버무리며 곧 마에다를 도로 센터로 복귀시켰다.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그 이유는 마에다 ‘절대 센터’의 AKB48이나 지연 ‘절대 센터’의 티아라나 같을 것이다. 센터는 사실상 ‘최고 인기멤버’가 서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그룹의 ‘얼굴’로서 그룹 이미지 전체를 상징할 멤버가 서는 자리라고 보는 게 옳다. 그러니 코어콘텐츠미디어는 어리고 깜찍한 그룹 이미지에 맞춰 멤버들 중 가장 어린 지연을 센터에 앉힌 것이고, 오피스48은, 아키모토 야스시 표현을 빌자면, “반에서 5번째 정도로 예쁜 아이들”로 구성했다는 그룹 전체이미지에 맞추다보니 무난한 외모의 마에다를 센터에 세우게 된 것이다.
당연히 의문이 일 수 있다. 이 같은 고정 센터 전략은 어느 아이돌그룹이든 다 사용하는 게 아니다. 고정 센터를 설정하지 않는 그룹들 중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많다. 그런데 왜 굳이 티아라와 AKB48만 이처럼 딱딱한 전략을 고집스레 펼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고정 센터를 설정하지 않는 걸그룹들의 특성부터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비고정 센터 걸그룹으로 소녀시대와 포미닛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이들에겐 비고정 센터 체제라는 점 외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음악적 색깔이 분명하다는 점이다. 소녀시대는 결성 당시부터 꾸준히 유로팝 계열을 지향했고, 포미닛 역시 결성 당시부터 꾸준히 일렉트로 힙합 계열을 지향했다. 소녀시대 노래를 들으면 소녀시대 노래 같고, 포미닛 노래를 들으면 포미닛 노래 같다. 비주얼 없이 노래만 들어도 그룹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티아라는 그런 그룹이 아니다. 결성 당시부터 지금까지 음악 콘셉트가 계속 오락가락했다. 그러다보니 ‘티아라는 이런 음악을 한다’는 뚜렷한 차별성과 개성이 생기질 않았다. 의상 콘셉트와 전체적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자면 매 싱글마다 다르다. 색깔이 없다. AKB48 역시 티아라처럼 별달리 색깔이 없는 그룹이다. 세일러복 베이스 의상을 즐겨 입힌다는 점 정도를 빼놓고는 음악 스타일도 전체 콘셉트는 매번 다르다.
이렇듯 색깔을 지우는 전략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이 많다. 일단 아이돌도 기본적으로 트렌드상품이라는 입장에서, 유행과 시류를 관찰해 그에 맞는 싱글들로 승부를 보기에는 색깔 없는 그룹 쪽이 확실히 유리하다. 그러나 이 같은 이점 외에 단점도 뚜렷이 존재한다. 개성과 차별성이 휘발되다보니 그룹 자체의 이미지 인식 차원에서 크게 뒤떨어진다는 점이다. 막상 티아라를 떠올리면, 개개 히트 싱글과 인기 멤버 정도만 떠오르지 그 이상의 이미지는 떠오르질 않는다. 무색무취, 언제라도 대체될 수 있는 팀처럼 여겨진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룹의 ‘얼굴’ 격 멤버를 설정, 그룹 전체 이미지를 그 단 한 명의 멤버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개성과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특징 없는 음식을 파는 식당은 간판이라도 특이해야 한다는 요식업계 논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 ‘얼굴’ ‘간판’ 개념을 아이돌 그룹 특성에 적용시키다보니 자연스레 댄스 포메이션의 센터 설정에 초점이 맞춰지게 됐고, 그러다보니 탄생된 게 바로 ‘절대 센터’ 개념이었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이번 ‘롤리폴리’에서 유난히 강조된 지연 ‘절대 센터’ 포메이션도 쉽게 이해될 수 있다. 티아라는 그 동안 참 갖가지 노래들을 선보이긴 했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롤리폴리’는 조금 경우가 달랐다. 레트로 디스코, 엄밀히 말하자면 ‘뽕끼 캔디팝’ 계열이었다. 이런 음악은 약간 더 흑인음악 개성이 강한 원더걸스, 약간 더 뽕끼가 강한 오렌지 캬라멜 등이 전매특허처럼 콘셉트를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색무취의 티아라로서는 선점 그룹들 개성에 눌려 제대로 차별성을 보이기 힘들었다.
그러다보니 지연이라는 그룹 ‘얼굴’ ‘간판’을 더 강조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것이다. 언뜻 들어도 원더걸스, 오렌지 캬라멜이 떠오르는 싱글을 티아라로서 인지시켜줄 단서는 오직 센터, 지연밖에 없었으리라는 것.
어찌됐건 ‘절대 센터’ 논란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바로 그런 노이즈 마케팅 덕에, ‘롤리폴리’는 ‘보핍보핍’ 이후 티아라 싱글들 중 가장 성공한 싱글로 거듭나게 됐다. 그리고 어쩌면 그 덕에 지난 한해 이미지 추락이 심했던 지연에게도 인기 재상승 기회가 마련됐을 수 있다.
앞선 AKB48만 해도 그랬다. 센터 독점에 화난 팬들이 제2회 총선거에서 결국 마에다를 2위로 끌어내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오피스48 측이 꾸준히 마에다를 센터로 푸시하고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도 “마에다가 센터에 서는 것이 아니라, 마에다가 서있는 곳이 센터”라는 코멘트로 지원사격에 나서자 팬들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점차 마에다를 인정하는 태도로 돌아섰다. 나아가 이어진 밀리언셀러 성공신화에 대해 마에다가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그러다보니 지난 6월9일 열린 제3회 총선거에서 마에다는 무려 13만9892표를 얻어 12만2843표를 얻은 지난해 1위 오오시마 유코를 누르고 다시금 1위로 복귀하게 됐다. 꾸준히 센터로서 밀어붙이고 그 과정에서 성공이 계속되면 아무리 미움 받던 센터더라도 이미지 회복에 성공할 수 있다는 방증이 됐다.
그런 점에서, 이번 ‘롤리폴리’ 성공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절대 센터’ 지연으로 낙점지어질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중의사나 분위기와 무관하게 기획사가 특정 전략을 꿋꿋하게 밀어붙이면 그에 대중도 결국 따라오게 된다는 또 다른 현상적 사례로 남게 될는지도 모른다. 흥미롭게 지켜볼 만한 아이돌 천하의 한 단락이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