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종성, 가슴이 뛰는 방향으로 '청춘로드'[4]

기사등록 2011/06/23 06:21:00 최종수정 2016/12/27 22:21:37
【서울=뉴시스】3360시간의 동안의 멕시코 자전거 여행

 근래에 발전을 거듭하며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 멕시코의 도로 여건은 좋은 편이 아니다. 더구나 티후아나와 멕시칼리를 연결하는 유일한 하이웨이인 2번 도로는 왕복 2차로 구간이다. 좁은 도로인 까닭에 트레일러나 버스 등이 겹쳐 지나갈 때마다 1m 안팎의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대개는 먼저 피하는 게 상책인지라 자전거를 도로 바깥으로 옮긴다.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 협소한 도
로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와 도로 끝에 다소곳이 피해 있는다. 지나가는 화물트럭 운전사들이 한국에서 온 이상한 자전거 여행자의 사정 따위 알아줄 리 만무하다. 그들은 도로의 무법자. 저 멀리 개미 발가락만한 점이 점점 거대해져 지축을 흔들며 매머드급 몸체로 나에게 다가올 때 느껴지는 그 위압감이란 삶이란 이리도 허무하게 마감할 수 있는 거로구나 생각하게 한다. 트럭의 덩치와 속력에 비례해 읊조리는 독백의 내용도 조금씩 바뀐다.

 “진도 3. 이건 진도 2.5. 오호, 이번 건 진도 4는 되겠는 걸?”

 도로에 혼자 남아 할 수 있는 싱거운 놀이다.

 이때 먼지바람이 회오리치는 어지러운 틈을 타 한 무리가 위협을 가한다. 낯선 방랑자의 퀘퀘한 냄새를 맡은 정체 모를 개들이다. 녀석들은 누가 포악한 성질 아니랄까 봐 철조망을 따라 시퍼런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온다. 그래봐야 철조망 안에 갇힌 신세다.

 약 올리는 데는 사람이고 동물이고 혀를 날름거리는 것만한 게 없다. 세 치 혀로 한껏 약을 올리고선 도포자락 휘날리는 양반이 되어 느긋하게 달린다. 약 오르면 어쩔 거냐며, 따라와 봐야 너희만 지친다며. 하지만 나는 곧 사색이 되었다. 녀석들이 내게로 돌진해 온다. 이럴 수가! 철조망 끝에 구멍이 나 있다. 맹렬하게 쫓아오던 녀석들은 조금의 드팀새도 없이 약 오르면 널 나의 앙칼진 이빨과 발톱으로 할퀼 거란 심히 표독스러운 얼굴로 사방에서 기세를 올린다. “어멋!” 화들짝 놀란 나의 발은 진동모터가 된다. 순간 균형을 잃을 뻔하고, 나는 비분강개하는 개님들의 역정에 당황해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아, 글쎄 미안하다구!”  

 공허한 메아리가 처연해지는 순간이다.

 트럭이 전세 내다시피 한 도로를 짐 무게에 휘청거리는 자전거로 가는 건, 들소 떼의 대이동에 거북이가 멋모르고 동참하는 격이다. 그래도 간간이 힘내라고 큰소리로 격려해 주는 사람들의 반응에 입꼬리가 올라가고 힘이 난다. 나에게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 손에 내 손을 얹어 반갑게 인사한 후 마주하는 시선으로 그들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아직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지 못했다. 국경 도시에서만큼은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람들과의 교제는 적응된 후로 미룬다.

 오후였다.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 동시에 건조해지는 야트막한 언덕길을 올라가는데 화물트럭들이 열을 지어 멈춰 있었다. 전봇대로부터 풀린 전선이 도로에 낮게 내려와 차들이 지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전깃줄 하나에 덩치 큰 화물트럭들이 꼼짝 못하는 장면이란….

 재미있는 상황에 가볍게 웃어넘긴다. 운전사들은 차에서 내려 여기저기 살피더니 방안을 모색 중이다. 아마도 우리네처럼 전력공사 기술자를 기다릴 것이다. 잠시 학교 건물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며 콜라로 목을 축였다. 10여 분 정도 흘렀을까. 육중한 차들이 다시 엔진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찌된 영문이지? 이렇게 빨리 외진 곳으로 복구차가 온 건가?’

 궁금해서 나가보았다. 전깃줄이 싹둑 잘려 있었다. 운전사들은 별일 아니라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차에 올라타 떠나고 있었다. 와우, 이렇게 손쉬운 해결이라니. 참 시크하다. 이번엔 황당한 웃음이 나온다. 운전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들의 예민한 부담감이었을까. 그들로선 거치적거리는 전깃줄 하나 때문에 밥줄이 끊길 수는 없는 노릇일 테다. 운전사들 사이에 침묵의 카르텔이 있었으리라. 법보다 앞서는 편의주의에 아무도 토를 다는 사람이 없다.

 제 길을 낸 트럭들은 오징어 먹물 싸 듯 짙은 연무를 내뿜으며 훌쩍 달려갔다. 그 뒤로 배기가스를 뒤집어 쓴 내가 묵묵히 자전거를 밀며 걸어간다. 그러다 트럭의 이동이 뜸해진 틈을 타 다시 안장 위에 오른다. 그제야 맘 편히 얼굴에 묻은 온갖 잡스러운 매연들을 바람에 씻어낸다. 하지만 다시 안장 위에서 내려온다. 저 뒤편에서 트럭들이 연이어 달려온다. 그리고 트럭이 지나갈 때를 맞춰 숨을 꼭 참아본다. 라틴의 공기를 폐부 깊숙이 머금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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