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연금개혁 한창인 '영국·스위스' 가보니…

기사등록 2011/06/23 11:41:45 최종수정 2016/12/27 22:21:43
영국 "복합개인연금 자동가입…기대감 고조"
스위스 "高소득자 공적연금부담 높여 소득대체율 60~70%"

【런던·취리히=뉴시스】류영상 기자 = 영국 런던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레이먼(38)씨는 기초연금(우리나라의 국민연금)외 별다른 노후대책이 없어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부에서 나오는 기초연금이라야 매주 100파운드(한화 약 17만 6천원)씩 지급받는 게 전부다. 이 금액은 런던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도 넉넉하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내년부터 일정 소득 이상의 모든 근로자가 연금에 자동가입 되는 새 제도가 시행되면 그도 기본적인 노후 생활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

 레이먼 씨는 "혼자 힘으론 노후준비를 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지만 앞으론 모든 회사에서 의무적으로 연금보험료를 지원받을 수 있고, 세제혜택도 있어 노후 생계고민이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공적연금 고갈사태에 직면해 있는 영국이 새로운 형태의 연금제도를 도입, 생존리스크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 가고 있다. 

 런던 금융가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아비바생명(Aviva)에서 만난 해리 스팀슨 본부장은 "생존리스크 위협에 직면한 유럽 국가들이 일제히 연금개혁에 나서고 있다"면서 "영국도 내년부터 신종 연금제도를 도입, 국민들의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로 도입될 연금제도는 기초연금 외에 개인연금계좌(PA·Personal Accounts)에 의무적으로 가입, 민간연금이면서 공적연금의 성격이 짙다"고 소개했다.

 해리 스팀슨 본부장이 소개한 PA는 회사가 근로자의 노후를 일정 부분 보장하는 확정기여형(DC형) 연금으로 구분되지만 우리나라처럼 종업원 퇴직금으로만 운영하는 퇴직연금과는 다른 개념이다.

 이 제도는 매달 직장인 월급의 8%를 연금으로 보장하는데 보험료는 본인과 기업체, 정부에서 각각 4%, 3%, 1%씩 부담한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 공적연금과 퇴직·개인연금이 뒤섞인 '복합 개인연금'인 셈이다. 현재 영국내 각 생보사들은 관련 연금상품의 수수료 책정 문제를 놓고 막판 조율작업을 벌이고 있다. 

 영국은 왜 이러한 독특한 형태의 연금제도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공적연금으로는 노후 리스크를 감당할 재간이 없기 때문.

 실제 영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2009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최하위 수준인 33.5%다. 은퇴 후 공적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수입이 퇴직 전 급여의 33.5%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는 OECD 평균치인 60.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노동인구 대비 피부양자(65세 이상) 비율도 26.8%로 OECD 평균 23.8%보다 3%포인트나 높다.

 영국 사회에 공적연금 위기론이 고조되면서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도 대폭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남자 64세, 여자 60세로 되어 있는 연금수급 연령을 남녀 구분 없이 2024년부터 66세, 2034년 67세, 2044년 68세로 올려 잡겠다는 게 영국 정부의 복안이다. 모두 공적연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대책들이다.

 이와 함께 영국은 파격적인 사적연금 활성화 방안도 내놓고 있다.

  먼저 영국정부는 개인연금 보험료 중 연간 5만 파운드(한화 약 90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해준다. 25만5000파운드(약 4억6천만원)이던 소득공제 한도를 지난해 낮춘 게 이 정도다.

또 계층별 연금보험 니즈를 높이기 위해 고소득층에는 랩과 비슷한 다양한 투자형 상품을, 저소득층에게는 낮은 수수료가 적용되는 신상품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아울러 연금제도의 기본취지를 살리기 위해 연금수령 시 한꺼번에 받지 못하게끔 규제하고 있다. 급전이 필요한 경우 비과세로 적립금의 최대 25%까지는 수령이 가능하다.

 올 10월부터는 모든 기업체에 65세 정년제를 폐지한다. 노인들의 소득보존 기간을 늘려주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2010년말 현재 영국의 청년 실업률이 20%인 점을 감안하면 정년제 폐지는 파격 그 자체다.

 빈스 스미스-휴즈 영국 프루덴셜생명(한국PCA생명) 기업부문 본부장은 "정부의 다양한 세제 혜택은 영국 국민들의 연금 가입 니즈를 높여 '연금 갭'을 줄여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특히 영국은 연금의 안정적 자산운영과 계리업무의 전문성, 리스크 관리 등의 이유를 들어 생보사만 연금상품을 취급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연금시장을 취재한 후 다음날 스위스 취리히로 이동했다.  

 스위스는 강제가입 방식의 퇴직연금제도를 최초로 도입한 OECD국가로, 전 세계에서 가장 조화로운 3층 보장 시스템을 자랑한다.

 1층인 국민연금은 목표로 하는 소득 대체율 수준은 딱히 없으나 45년(남자) 가입 시 은퇴 전 소득의 약 35%를 연금으로 지급, 국민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한다. 2층인 퇴직연금과 합치면 은퇴 전 소득의  60~70%의 소득 대체율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다 근로인구의 85%정도가 개인연금에 추가가입 하는 등 과히 놀랄만한 수준의 연금제도를 뽐내고 있다.

 3층인 개인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으로 인해 적정 소득대체율을 확보하기 어려운 고소득층과 절세효과를 노리는 사람들이 주로 활용한다. 개인연금은 3a와 3b 방식으로 구분된다.  

 우선 6682스위스프랑(한화 약 857만원)의 세금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대신 65세까지는 해약을 못하게 설계한 3a상품이 눈길을 끈다.

 이 상품은 보험사와 은행에서 모두 취급하는데 퇴직연금 보장이 없는 자영업자의 경우엔 3만3408(약 4286만원)까지 세금공제 혜택이 있다. 3b 상품은 우리나라의 개인연금과 비슷한 성격이다.

 스위스 연금제도의 또 하나의 특징은 고소득자가 2~3배 이상의 보험료를 내면서도 연금수령액은 저소득자와 비슷하다는 것. 이에 따라 고소득자가 저소득자보다 상대적으로 적립해야 할 은퇴자산 비중이 높다.

 놀라운 점은 상황이 이러함에도 고소득자들의 불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본느 랭 캐터러 취리히 그룹 보험총괄 대표는 "스위스의 연금정책은 직접투표를 실시해 과반수 이상의 득표가 나와야 확정된다. 즉 사회 시스템적으로 먼저 동의가 된 부분이기에 고소득자에게 불리한 연금정책도 순조롭게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뮤지크 안드레아스 스코르 재보험 마케팅 이사는 "(스위스의 공적연금은) 연봉이 높다고 해서 받는 수령액이 결코 많지 않다"며 "이러한 이유 등으로 1~2층 연금제도만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은퇴전 소득의 70%정도를 보장 받을 수 있어 이상적인 구조"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유럽처럼 초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으나 대응속도는 더딘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국가별 소득대체율(국민연금+퇴직연금)은 43%로 OECD 국가중 28위다. 또 국내 사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수준은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40~50%에 훨씬 못미치는 17.6%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적연금 자산비중도 11.9%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본적으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낮은데다 퇴직연금은 그간 퇴직금을 가계자금 용도(주택마련, 빚청산 등)로 사용한 경우가 많아 웬만한 규모의 개인연금에 가입하더라도 기본적인 노후생활도 보장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개인연금의 역할을 노후소득보장체계의 관점에서 개인연금 활성화와 노후소득 보장성 기능 강화로 인식, 연금 수급률과 소득대체율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뮤지크 안드레아스 스코르재보험 마케팅 이사는 "유럽국가들은 공적연금에 대한 부담을 개인연금에 대한 지원 강화로 해답을 찾고 있다"며 "특히, 영국이나 스위스의 경우 과세이연이라는 세제혜택을 중심으로 개인연금 가입을 독려하고 있다"고 조언했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에서 기존 3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세제혜택을 늘렸지만 퇴직연금과 합산하다보니 무용지물"이라며 "세제혜택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으로 묶여 있는 소득공제 한도를 분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생보사만 판매하는 세제비적격 상품의 경우에도 현재 10년 비과세 기간을 점차 줄이고, 영국이나 스위스와 같이 연간 납입보험료에 대해 소득세 등의 과세대상에서 제외시키는 방안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ifyouare@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