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불륜·기밀유출…한국외교 만신창이

기사등록 2011/03/15 11:16:12 최종수정 2016/12/27 21:51:43
【서울=뉴시스】중국 상하이 주재 총영사관 영사 등 외교관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33)씨. (사진=서울신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이현정 기자 = 상하이(上海) 총영사관 영사들과 33세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의 불륜 파문에 기밀유출 의혹이 더해진 상하이발 악재에 한국 외교가 심판대에 올랐다. 

 덩씨를 둘러싼 외교관들의 삼각, 사각 스캔들과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가 주장한 정보기관 공작설까지 삼류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막장극의 중심에 외교통상부가 섰다.

 ‘상하이 스캔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지난 8일이지만 정부가 사실을 인지하고 조사에 들어간 것은 지난 1월이었다.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실은 법무부 출신의 H전 영사, 지식경제부 출신의 K전 영사, 외교통상부 소속 P전 영사가 덩씨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주요 자료를 유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은 뒤 이들의 관계를 입증할 편지와 사진 등을 입수했다.

 당초 정부는 이번 사건을 현지 공관원들의 부적절한 사생활에서 비롯된 단순 ‘치정(癡情)’사건으로 간주하고 해당자를 소환해 조사하는 선에서 무마시키려 했지만 기밀유출 의혹까지 제기되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이들이 덩씨에게 건넨 것으로 알려진 자료 중에는 국내 유력 정관계 인사 200여 명의 휴대전화번호 등 연락처와 주 상하이 총영사관 비상연락망, 비자발급 관련 자료, 외교통상부 인사 관련 문서 등 각종 기밀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 정부 실세와 여당 의원들의 번호를 사진으로 찍은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엑셀 문서파일까지 발견돼 정부 기밀을 적극적으로 수집해 빼돌렸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단순 ‘치정’사건이 상하이판 ‘마타하리’에 의한 조직적 정보유출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게다가 당시 상하이 총영사관을 책임지고 있던 김정기 전 총영사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해졌다. 33세 미모의 중국 여성에 상하이 총영사관이 놀아난 셈이다.

 청와대는 부랴부랴 합동조사단을 꾸리고 상하이 현지조사를 지시했다. 그러나 덩씨와 불륜관계를 인정한 법무부 출신의 H전 영사는 지난 1월 국내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뒤 사표를 내고 덩씨를 만나러 출국해 현재까지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그의 출국을 사실상 ‘방조’하고도 현재까지 H전 영사가 상하이에 있을 것이라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 정확한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상하이스캔들’로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몽골대사관 고위 외교관도 현지 여성과의 불륜 문제로 공직에서 물러났던 사실이 10일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2009년 주 몽골 대사관에 근무하던 고위 외교관 P씨는 현지에서 채용한 여비서와 내연관계로 지냈으나 이후 이 여성이 임신을 이유로 P씨에게 거액을 요구했고 이 과정에서 현지 조폭들까지 개입해 P씨를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P씨는 이 문제와 관련, 관계 당국의 조사를 받고 지난해 2월 사직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하이와 몽골 양쪽에서 한국외교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외교관련 업무에 경륜이 일천한 정치권 인사를 기용해 문제의 심각성을 키웠다고 지적했다.

 9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비(非) 외교관 출신 인사를 해외 주재 공관장으로 임명하는 특임공관장 제도에 대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한나라당 구상찬 의원은 “고개를 못들 정도의 사건이 발생해 외교부가 어려움에 빠졌다”며 “중국 대사, 홍콩 총영사, 광저우 총영사, 대만 대표, 미국대사, 일본대사가 모두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인데 우리 외교가 이러니 이런 사건이 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김동철 의원도 “한나라당 조직 책임자를 어떻게 국익이 왔다갔다 하는 외교 일선의 공관장에 임명하느냐”며 “직업의식과 외교관의 사명감이 없는 사람을 임명하는 제도는 큰 문제가 있다”고 특임공관장 제도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이번 사태는 물 좋은 공관에 비외교관 출신을 배치하면서 잉태된 씨앗”이라며 “각 부처에 파견한 사람에 대한 소양교육과 재교육을 실시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상하이 스캔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김정기 전 상하이 총영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후보자 시절 대선캠프 활동을 한 덕에 특임공관장 형식으로 총영사 직을 맡은 인물이다.

 이외에 한나라당이 BBK사건 대처를 위해 만든 네거티브 대책단의 김재수 전 로스앤젤레스(LA) 총영사, 이하룡 전 시애틀 총영사도 자질시비가 일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인사다.

 외교통상부는 우리 외교관이 관련된 ‘상하이 스캔들’ 사건을 계기로 재외공관들에 대한 전면적인 쇄신 작업에 착수하기로 했다.

 조병제 외교부 대변인은 9일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공정하고 개방적인 외교통상부라는 케치프레이즈를 갖고 개혁 작업을 추진하던 중 최근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의 국문번역분 오류, 상하이 총영사관 문제로 매우 곤혹스럽다”며 “지금의 상황을 아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데 의견이 일치했다”고 외교부 내 분위기를 전했다.

 외교부는 전 재외공관에 여권·민원업무·비자·내부 보안점검 등 보다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침을 보내 공관장 책임 하에 특별 복부점검과 교육을 실시하기로 했다. 또 총영사관이 주로 비자·영사·민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오는 21일 열릴 예정인 총영사 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집중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전면 재조사하기 위해 국무총리실과 외교통상부 합동으로 주(駐)상하이 총영사관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문제가 된 상하이 총영사관에도 합동조사단을 파견해 이번 사태의 전말을 철저히 파악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현재 조사를 받고 있는 김정기 총 영사관 뿐만 아니라 나머지 3명의 영사에 대해서도 필요한 경우 재 소환할 계획이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덩씨에 대한 조사는 여전히 막막한 상태다.

 김석민 총리실 사무차장은 기자들을 만나 “덩씨에 대한 조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며 “중국 언론도 이 문제를 보도하기 시작했는데 그런 부분도 고려를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보유출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해당자들을 검찰에 고발하고 부적절한 처신으로 물의을 일으킨 인물에 대해선 해당 부처해 통보해 조치할 방침이다.

 hjlee@newsis.com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18호(3월21일자)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