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시스】진현철 기자 = 김기영(1919~1998)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알려진 ‘죽엄의 상자’(1955)가 미국에서 발견됐다.
김한상 미국 하버드-옌칭연구소 방문연구원은 26일 미국 메릴랜드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 중인 ‘죽엄의 상자’를 발굴했다고 밝혔다.
‘죽엄의 상자’는 6·25동란에서 전사한 아들의 국군 동료라고 노모(김명순)와 누이(강효실)를 속인 인민군 빨치산 대원(노능걸)이 민심을 교란시키는 등 정치공작을 벌이지만, 누이의 연인인 경관(최무룡)의 활약과 희생으로 실패한다는 반공영화다.
김 연구원은 “해방 이후 국산영화로는 최초로 동시녹음을 시도했지만, 안타깝게도 사운드는 유실된 상황”이라며 “하지만 이미지는 남아 있어 영화적 실체를 확인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김 감독이 직접 설계한 조명 실험이 돋보인다”며 “정체를 숨기고 정치 공작을 하는 노능걸의 호연과 함께 향후 김 감독 영화의 독특한 여성 캐릭터들과의 연관을 추측케하는 강효실의 표정 연기가 인상적”이라고 특기했다.
“지금까지 관련문헌들을 통해 ‘죽음의 상자’ 혹은 ‘주검의 상자’로 알려졌지만, 오프닝 크레디트에는 ‘죽엄의 상자’로 돼있다”며 “이는 유골상자(주검의 상자)와 시한폭탄 상자(죽음의 상자)라는 중의적 의미를 반영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 연구원은 11월15일 하버드-옌칭 연구소와 하버드 한국학연구소가 주체하는 관련 행사에서 ‘냉전과 한국 내셔널 시네마의 혼종적 기원: 김기영 감독 데뷔작의 발굴로부터’라는 제목으로 자세한 내용을 발표한다.
한편, 한국영상자료원 소속이기도 한 김 연구원은 주한 미공보원 산하 리버티 프러덕션이 제작한 ‘죽엄의 상자’와 함께 ‘나는 트럭이다’, ‘수병의 일기’ 등 문화영화 2편도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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