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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업 필름]선을 넘은 물량공세…'비상선언'

기사등록 2022/08/0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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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비상선언'은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는다.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쓸어 담는다. 그리고나서 하나씩 꺼내놓는다. 그래서 항공재난영화라는 말로 분류된 이 작품의 장르는 그게 전부가 아니다. '비상선언'은 범죄물이고, 수사물이다. 액션극이고, 로맨스극이며, 성장극이다. 한국사회 현실을 조망하고 풍자하고 비판한다. 인간성에 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게다가 송강호·이병헌·전도연·임시완·김남길·김소진·박해준 등 스타 배우들이 집결해 있다. 이 영화에는 흥행을 겨냥한 거의 모든 요소가 있다. 다만 '비상선언'이 140분 간 쏟아붓는 물량공세는 때로는 바로 그 흥행 저격에 성공하지만, 많은 경우 명중하지 못 하고 빗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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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에는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모두 있다. 이 영화는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기내에서 테러가 발생한 직후까지 과정이 전반, 재난 상황이 기내 전체를 덮친 뒤의 이야기가 후반이다. 첫 번째 파트는 꽤나 낯설고, 두 번째 파트는 대체로 익숙하다. '비상선언'은 테러리스트의 정체를 일단 밝히고 영화를 시작하는 과감한 방식을 통해 재난의 시작을 향해 최단 거리로 돌진한다. 이 속도감은 몰입과 긴장을 동시에 높인다. 보통의 재난영화가 초중반부까지 이른바 '밑밥 던지기' 작업을 이어가는 것과 다르게 '비상선언'은 시작하자마자 서스펜스의 출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이 전개는 낯설어서 꽤나 성공적이다.

능숙한 완급 조절을 통해 안정적으로 이륙한 '비상선언'은 본격적인 비행에 들어간 뒤에는 클리셰에 굴복하고만다. 이 영화가 일반적인 재난 영화와 가장 다른 점은 피해 지역이 상공에 있는 비행기로 한정돼 있고, 피해자 역시 탑승객으로 제한돼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후반전은 더 이상 피해가 확장될 수도, 피해자가 늘어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펼쳐지게 된다. 이때 이 작품이 남은 러닝타임을 채워넣기 위해 택하는 건 재난영화의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다. 가령 타인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이들은 전사(前史)로 얽혀 있고, 또 누군가는 투철한 직업정신을 발휘한다. 그리고 두려움을 극적으로 이겨내고 영웅적 기지를 발휘하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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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장단점이 혼재돼 있는 작품이지만, 이 영화는 재난물로서 장르의 매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우선 테러용 바이러스가 서서히 기내 전체로 퍼져가는 공포감이 밀도 있게 표현돼 있다(물론 이 대목에서의 긴장감은 모든 관객이 경험했고 현재까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 영향도 있다). 사건이 벌어진 상공과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온갖 작업이 이뤄지는 지상의 리듬감 있는 교차는 긴 러닝타임으로 인해 느슨해질 수 있는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어준다. 하이라이트는 기체가 360도 회전하며 급전직하 하는 시퀀스다. 짐벌 위에 비행기 세트를 지어놓고 실제로 회전시켜가며 촬영한 이 장면은 어떤 재난영화에서도 보여준 적 없는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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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선언'이 가장 조악해지는 대목은 메시지를 거칠게 드러내는 순간들이다. 영화는 세월호 참사를 강하게 환기하고, 혐오와 배제가 판치는 시대상을 경유한 뒤, 인간 본성을 긍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이 영화가 코로나 사태를 떠올리게 하는 건 제작 시기를 고려할 때 우연히 맞아떨어진 부분이기에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이 작품이 던지는 이러한 사회적 논점들은 숙고한 끝에 내놓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영화의 구색을 맞추기 위해, 혹은 관객의 감정을 쉽게 자극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최소한의 진정성이 담겨야 할 요소들이 흥행을 위한 패키지 중 하나로 읽힌다는 것이다.

비행기에 고립된 채 두려움에 떠는 고등학생들을 등장시키며 굳이 교복을 입혀놓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맞물려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목소리 한 번 들을 수 없는 대통령을 수차례 소환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혐오와 배제라는 현 시대 전 인류의 깊은 고민을 녹여내면서 이를 절멸이라는 간편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설정에는 도대체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숭고한 결정을 표현한 뒤에 이를 마치 우스운 것으로 만드는 듯한 반전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이렇게 메시지를 반복해서 드러내면서도 극 중 재난 발생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에 대한 애도 하나 없는 이 작품의 엔딩은 또 어떻게 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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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좋은 배우들이 있어서 '비상선언'은 끝까지 버틴다. 송강호는 땅에서 이병헌은 하늘에서 중심을 잡는다. 두 배우는 극의 균형이 상공과 지상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는 무게감을 보여준다. 임시완은 분량이 많지 않은데도 그 어떤 배우보다 임팩트 있는 연기를 한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연말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한다. 김남길·김소진·박해준은 베테랑답게 안정적인 연기로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아쉬운 건 전도연이다. 애초에 그가 맡은 인물에 이렇다 할 캐릭터가 부여되지 않아 아무리 전도연이라고 해도 살려내기 어려운 역할이었다.

이 영화 종반부에는 비행기 비상 착륙 문제를 놓고 일본 정부와 우리 정부가 대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는 일본 자위대 전투기가 우리 비행기를 향해 위협 사격을 하는 장면 역시 담겨 있다. '비상선언'은 재난 상황에 휩싸인 비행기와 승객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일본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흥행을 위해 소모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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