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잘알]4할 백인천·달인 장효조, 역대 프로야구 타격왕은?

기사등록 2021/10/26 06:00:00

백인천, 프로야구 역사의 유일한 4할 타자

장효조-양준혁은 타격왕 4회 수상

2009년 박용택 타격왕 만들기 위한 LG 트윈스 고의 피하기 논란도

올해는 이정후-강백호-전준우 3파전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C조 예선전 대한민국 대 호주의 경기, 백인전 천 감독이 시구를 하고 있다. 2019.11.06. 20hwan@newsis.com
【서울=뉴시스】이영환 기자 =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 12 C조 예선전 대한민국 대 호주의 경기, 백인전 천 감독이 시구를 하고 있다. 2019.11.0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권혁진 기자 = KBO리그 타격왕은 그해 최고의 타격 고수에게 붙는 영예로운 칭호다. 올해는 여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으로 막판 팀 순위 싸움 못지않은 재미를 선사하고 있다.

1위 경쟁은 이정후(키움), 강백호(KT), 전준우(롯데)의 3파전으로 압축됐다.

세 선수 모두 데뷔 첫 타격왕 도전이다.

8월 중순까지 4할을 지키며 독주 체제를 갖추는 듯 했던 강백호의 페이스가 크게 떨어진 사이 이정후가 그 틈을 파고들면서 경쟁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후반기 맹타를 휘두르고 있는 전준우까지 가세하면서 타이틀의 주인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역대 타격왕 중 가장 압도적인 수치를 찍은 이는 프로 원년인 1982년의 백인천이다. 백인천은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뛰면서 초대 타격왕에 등극했다.

20년 가까이 일본프로야구를 경험한 백인천과 아직 실업의 티를 벗지 못한 다른 선수들은 현격한 수준차를 보였다. 그 결과 백인천은 0.412(250타수 103안타)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2위 윤동균(OB베어스·타율 0.342)과 7푼이나 차이가 났다.

백인천 이후 수많은 타격 도사들이 4할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현재까지 아무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근접했던 이는 1993년의 이종범(해태)이다.

이종범은 104경기까지 4할을 유지했지만 아쉽게 목표에 조금 못 미치는 0.393으로 시즌을 마쳤다. 은퇴 후 이종범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생고기를 먹고 배탈이 났다"고 언급한 바 있다.

삼성 라이온즈의 전설적인 두 선수인 장효조와 양준혁은 한 번도 힘든 타격왕을 4차례나 경험해 이 부문 최다 기록을 갖고 있다.

1983년 첫 타격왕에 오른 장효조는 1985년부터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KBO리그에서 3년 연속 수위 타자가 된 이는 장효조 뿐이다. '타격의 달인'으로 불리던 장효조의 프로 통산 타율 0.331은 여전히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타격 기술만큼은 남부럽지 않았던 양준혁도 1993년, 1996년, 1998년, 2001년 네 차례나 타격 타이틀을 수상했다. 앞선 세 차례는 삼성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2001년에는 LG 트윈스 소속이었다.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티아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화보 촬영에서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choswat@newsis.com
【서울=뉴시스】조종원 기자 = 11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티아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로야구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화보 촬영에서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LG의 '영원한 9번' 이병규는 최고령 타격 1위 기록을 갖고 있다. 1974년 10월생인 이병규는 우리나이로 마흔이 된 2013년 타율 0.348로 트로피를 가져가는 노익장을 과시했다.

초대 타격왕 백인천 역시 이병규와 같은 만 39세에 대업을 이뤘지만 생일이 이병규보다 한 달 가량 늦다.

1989년 빙그레 이글스에서 뛰던 재일교포 고원부는 역대 최저 타율 타격왕이다. 그의 기록은 0.327. 당시 김영덕 감독은 고원부를 타격왕으로 만들기 위해 일부러 경기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고원부의 사례처럼 타율 관리를 위해 일종의 편법들이 동원됐던 기억은 제법 있다.

2009년 박용택(LG)과 홍성흔(롯데)의 막판 경쟁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최종전을 앞두고 박용택과 홍성흔의 타율은 각각 0.374와 0.372였다. 홍성흔이 승부를 뒤집기 위해서는 반드시 2안타 이상이 필요했다.

공교롭게도 롯데의 시즌 마지막 상대는 LG였다. LG 투수들은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홍성흔에게 결코 좋은 공을 허락하지 않았다.

첫 타석부터 LG 투수들의 철저한 외면에 볼넷을 골라낸 홍성흔은 이 후 세 타석에서도 상대가 고의사구에 가까운 공들만 던진 탓에 배트조차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고 물러났다.

홍성흔은 더 이상 안타가 무의미해진 5번째 타석에서 고대하던 정면 승부를 맞았지만 외야 뜬공으로 물러났다. 결국 그해 타격왕은 타율 관리를 위해 롯데전을 건너뛴 박용택에게 돌아갔다.

경기 후 롯데 제리 로이스터 감독은 "창피한 작전이다. 매우 실망했다"며 불같이 화를 냈고, LG 김재박 감독은 "박용택이 선수 생활에서 여러 번 맞기 힘든 좋은 기회를 잡아 꼭 도와주고 싶었다"고 투수들에게 홍성흔과 승부하지 말라고 지시했음을 시인했다.

엄청난 비난에 시달려야 했던 박용택은 지난해 은퇴에 앞서 "정말 그 이후로는 야구장 안팎으로 많이 노력하고 살았다"며 다시 한 번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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