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괴물 신예' 증명했다...피아니스트 임윤찬, '초절기교'

기사등록 2021/10/14 04:44:00

[서울=뉴시스] 임윤찬. 2021.10.13. (사진 = 목프로덕션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임윤찬. 2021.10.13. (사진 = 목프로덕션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다리가 휘청였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7)은 지난 12일 오후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독주회를 마친 뒤 다리에 힘이 풀린 듯했다. 수차례 진행된 커튼콜에서 몸이 좌우로 흔들렸다. 이마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90여분간 인터미션 없이 독주회를 끌고 가는 일은, 만만찮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노동이다. 더구나 임윤찬은 지난달 25일 통영을 시작으로 광주(이달 1일)·대구(5일)·성남(7일)을 이미 돈 만큼 체력적 부담도 따랐다.

그럼에도 임윤찬은 거침 없었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 모음곡 가운데 두 번째 '이탈리아' 중 4·5·6곡과 12개의 '초절기교(超絶技巧) 연습곡' 전곡을 악보 없이 일사천리로 연주했다.

특히 하이라이트는 12개의 초절기교 연습곡이었다. 초절기교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 같은, 고난도 연주기술을 가리킨다.

임윤찬은 절정의 테크닉을 선보였다. 만 17세의 나이에도, 완급조절로 객석을 쥐락펴락하며 자신이 '괴물 신예'로 불리는 이유를 설득해냈다. 

같은 레퍼토리를 선보인 앞선 다른 지역의 공연에서 위기가 있었다. 12개의 초절기교 연주 도중 4번 '마제파'에서 5번 '도깨비불'로 넘어가는 부분이다.

마제파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곡 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곡이다. 7분가량 잠시도 쉬지 않고 건반을 눌러야 한다. 이 곡을 연주하고 나면, 마비될 정도로 팔의 감각이 없어진다.

그런데 만만치 않은 스킬이 역시 필요한 5번 '도깨비불'을 바로 연주해야 해 피아니스트가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날 임윤찬은 이 부분에서도 거침이 없었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서울=뉴시스] 임윤찬. 2021.10.11. (사진 = Taeuk Kang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임윤찬. 2021.10.11. (사진 = Taeuk Kang 제공) [email protected]
그렇다고 임윤찬이 몰아치기만 한 건 아니다. 급박한 전개의 8번 '거친 사냥'을 연주한 뒤 9번 '회상'에서 숨을 골랐다. 서정성이 넘치는 이 곡에선 섬세했다.

임윤찬의 연주 테크닉은 과시용이 아닌, 작곡가가 그려놓은 음표의 본질을 최대한 그대로 들려주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그의 매끈한 연주력은 작곡가의 마음을 왜곡없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돋보기와 같다.

또 임윤찬은 검은색과 흰색 건반 위에서, 어둡고 밝은 젊음을 마음껏 실험하는 열정도 불살랐다. 리스트의 진보성을 상징하는 초절기교가 임윤찬을 만나 제 기능을 했다.

정형화되지 않는 것이 리스트의 본질 중 하나다. 임윤찬이 그 근본적인 성질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모습에 객석은 신뢰를 보냈다.

연주자에 대한 믿음은 나이나 연주한 세월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닌, 그 연주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 순간이다. 

최근 클래식업계는 임윤찬이 끓는점이 돼 다시 김이 피어오르고 있다. 그는 실력과 감성뿐 아니라 외모, 지성도 갖췄다는 평을 듣고 있다. 릴케를 좋아하는 이 학구적인 청년에 대중과 평단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이날 연주는 차세대 피아니스트의 시작을 제대로 알리는 확실한 서곡이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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