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만 굵직한 노동 연극 3편 잇따라 개막
7월 아이돌 출연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도
이해성 연출이 이끄는 극단 고래는 10일 대학로 연우소극장에 신작 연극 '굴뚝을 기다리며'를 올렸다. 27일까지 공연하는 이 작품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오마주했다. 극작·연출을 맡은 이해성은 이 작품에서 모티브를 얻어 굴뚝 위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썼다.
언어유희가 계속되는 동시에 기계로 대체되는 인간 노동의 문제, 고공에서 농성하는 사람들의 삶 등 한국의 노동 현실을 증언한다. 특히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인물의 이야기로 '실존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베케트의 원작 정신을 차용했다.
극단 골목길 출신 이은준 연출이 이끄는 극단 파수꾼은 오는 17일~27일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신작 '7분'을 공연한다.
이탈리아 극작가 스테파노 마시니가 프랑스의 노동현장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섬유회사가 다국적 기업에 매각되면서, 해고 두려움을 느끼는 공동 노동자들 이야기다.
미국 펜실베니아의 철강 산업 도시 레딩이 배경. 노동권을 지켜내기 위한 노동자들의 노력과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종차별, 노동자와 사측의 대립, 노동자 간 분열 등을 그린다. 이를 통해 노동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
7월에도 노동연극이 이어진다. 극단 현이 오는 7월 7~18일 씨어터쿰에서 신작 '트리거'를 선보인다. 2010년 용광로에 빠져 숨진 젊은 노동자의 기사를 보고 쓴 제페도 시인의 시가 모티브다.
지난 3월 아름다운청년 전태일기념관에서는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삶을 다룬 연극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가 초연하기도 했다.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면서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이 쓴 소설 세 편의 시놉시스(초안) 세 편이 모티브다. 그는 소설가를 꿈 꾼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노동연극…2010년대 삶과 맞물리며 싹 터
이후 일부 단체에 의해 공연되던 노동 연극은 2010년대 들어 예상치 못하게 대학로 연극인들 사이에 똬리를 틀었다. 대학로 인근에 본사를 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을 위해 2013년 2월 열린 단막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이 대표적 예다. 극작가 오세혁, 김은성, 이양구, 윤한솔 등 대표적 젊은 연극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9년 초연한 노동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연출을 맡기도 했다. 이연주 작가가 고용인의 '약속'에서 계속 소외되며, 삶의 숨 쉴 공간까지 위협받는 노동자 개개인의 서글픈 초상을 그렸다. 또 이 작가는 김태형이 연출한 전태일 연극 '어쩔 수 없는 막, 다른 길에서'를 쓰기도 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시국에, 노동집약적인 연극인들의 실제적 생계가 위협 받으면서 연극인들 사이에서 노동에 대한 고민이 더욱 깊어졌다.
'굴뚝을 기다리며'의 이해성 연출은 "지금 이 순간 여기, 우리의 실존을 묻고자 한다. 결코 유보될 수 없는 우리 삶의 현재적 가치와 그 현재의 순간을 힘겹게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를 함께 이야기한다"고 전했다.
뮤지컬 등으로 스펙트럼 넓히는 노동 공연
오는 7월4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1976 할란카운티'가 대표적이다. 유병은 연출이 극작도 맡은 창작뮤지컬로, 미국 노동운동의 이정표가 된 할란카운티 탄광촌의 실화가 바탕이다.
4년 만인 오는 8월31일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개막하는 라이선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속에서도 노동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동명영화가 바탕인 이 뮤지컬은 발레에 이끌린 가난한 탄광촌 소년 빌리의 성장과 시대의 유물로 전락한 광부 공동체의 균열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다.
앞서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대학로에서 공연하며 흥행한 음악극 '태일'도 전태일을 다룬 작품이다. 이번에 몇차례 무대에 올랐으나 장기 공연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 등 대학로의 쟁쟁한 젊은 창작진이 뭉쳤다.
뮤지컬뿐만 아니다. 11년 만인 최근에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안무가 정영두의 대표 무용작 '제7의 인간'은 1970년대 유럽 이민노동자들에 대한 기록인 '제7의 인간'(존 버거·장 모르 지음)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었다.
연극 신작 중에선 열악한 노동 문제를, 글로벌 시스템 차원에서 접근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김재엽 연출이 이끄는 극단 드림플레이 테제21가 최근 공연한 '자본2 :어디에나, 어디에도'가 그것이다.
최근 노동 관련 작품들은 단지 현실 고발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거나, 함께 연대하는 방안을 찾는다.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시대에 공연으로 연대하는 것이다.
'스웨트'의 안경모 연출은 "우리가 단지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하는 것인지, 노동 상실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파괴되는지, 나아가 그러한 극한의 상황에서 타인과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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