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미생물이 건강의 열쇠…마이크로바이옴이 뜬다

기사등록 2021/01/14 12:00:00

최종수정 2021/01/18 10:08:25

체내 38조개 미생물이 신경계·면역계 등에 영향

수렵·채집인과 서구인은 장내 미생물 분포 달라

타인 대변 이식하면 환자 건강 상태에 큰 변화

마이크로바이옴 이용한 헬스케어, 신약 개발 활기


[서울=뉴시스] 안호균 기자 = 우리 몸에는 세균, 박테리아, 곰팡이와 같은 다양한 미생물이 살고 있다. 사람의 세포 수는 30조개 정도지만 체내 미생물의 개체 수는 38조개에 달한다. 사람의 몸 안에서 미생물들이 이루고 있는 생태계를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생명 유지와 진화의 과정을 미생물과 함께 하며 공존해왔다. 미생물이 우리 몸에 해로울 것이라는 오해와는 달리 마이크로바이옴이 건강에 매우 필수적인 요소라는게 최근의 연구 결과다. 실험용 쥐를 태어날 때부터 멸균 상태로 키우면 혈관 형성도 잘 되지 않고 체중도 적게 나간다고 한다. 면역계의 항체 생성 능력과 뇌의 발달도 떨어진다. 이런 쥐들은 병원균에 노출돼도 쉽게 죽는다.

그동안 과학계는 인간의 DNA와 관련한 연구가 발전되면 생로병사의 비밀도 풀릴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우리 몸 안에 있는 미생물들이 하는 다양한 역할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유전자 수는 약 2만개에 불과하지만 미생물들은 150배가 넘는 300만개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

비만, 당뇨, 아토피 증가는 장내 미생물 변화때문

14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이런 미생물들의 생태계를 연구해 건강의 유지와 질병의 치료에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최근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생물들이 면역계와 신경계 등 우리 몸의 주요 기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유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미생물의 생태계와 그 유전자는 바꿀 수 있다는 점도 마이크로바이옴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다.

몸 속 미생물의 대부분은 대장 속에 살고 있다. 적게는 100종에서부터 많게는 1000종에 이른다. 이 미생물들은 대장 건강 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넘어 신경계와 면역계를 움직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 내 미생물 중에도 유익균과 유해균이 있고 사람마다 그 구성이 다르다. 마이크로바이옴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현대 사회가 되면서 이전에는 없던 비만, 당뇨, 아토피피부염 등의 병들이 급증하게 된 것도 미생물 생태계의 변화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항생제 개발, 위생 여건 개선, 식습관 변화 등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바꾼 요인으로 꼽힌다.

마이크로바이옴 데이터업체 천랩에 따르면 수렵·채집인의 장내 미생물을 분석하면 프레보텔라(prevotella)라는 미생물이 많이 검출된다. 하지만 미국 등 서양인들의 장 속에는 프레보텔라가 거의 없고 박테로이데스(bacteroides)라는 미생물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이 유형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에 따라 변한다. 수렵·채집 문화를 가진 민족이 미국으로 이주하면 프레보텔라가 많은 P형에서 박테로이드가 많은 B형으로 바뀐다. 밀가루와 같은 정제 탄수화물, 가공식품, 육식 등 서구화된 식단을 먹으면서 장내 미생물 분포도 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건강상태가 나쁜 사람들 중에는 장내 미생물의 ㄷ 다양성과 균형이 심각하게 무너져 있는 O형이 많다.

대변으로 치매, 당뇨, 아토피 치료한다

장내에 미생물의 다양성이 무너져 있는 상태를 디스바이오시스(dysbiosis)라고 한다. 보통 인간이 질병에 걸리면 디스바이오시스가 되기 쉽다. 반대로 디스바이오시스 상태로 장이 변하면 질병에 걸리기도 쉬워진다. 장 내 미생물 생태계와 우리 몸이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상호작용하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들은 우리 몸에 침입하 유해균을 방어하고 면역세포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기간이나 크기를 조절하는 역할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장 내에는 많은 신경세포들이 있어 미생물들이 우리 신경계에도 작용한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마이크로바이옴은 과민성장증후군, 크론병, 대장암 등 장 질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질병과 연관성이 높다. 뇌질환(치매, 우울증 등), 간질환(간염, 간암 등), 대사질환(당뇨, 비만 등), 심혈관질환(동맥경화, 심근경색 등), 면역질환(아토피, 천식, 알레르기) 등 한국인들이 잘 걸리는 질병 중 절반 이상이 마이크로바이옴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치료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인간의 대변 안에는 장내에 존재하는 미생물들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대변을 검사해 마이크로바이옴 상태를 파악 할 수도 있고, 대변을 이용해 마이크로바이옴을 다른 사람에게 이식할 수도 있다.

지난 2015년에는 미국에서는 평생 한 번도 비만한 적이 없는 재발성 장염 환자가 과체중인 딸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받고 체중이 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2017년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18명의 청소년들에게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한 결과 6개월 후 장 건강이 개선되고 2년 후에는 자폐 진단 비율이 50%로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마이크로바이옴이 뜬다…신약 개발 활기

아직까지 모든 장내 미생물의 현황이나 우리 건강·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이 모두 규명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생활습관을 바꾸거나 다른 사람의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식하는 방식이 건강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을 건강 관리와 질병 치료에 활용하려는 시도가 활기를 띄고 있다. 대변을 이용해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하고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점차 늘고 있다. 또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업체들도 있다.

천랩은 헬스케어 서비스와 신약 개발을 모두 진행 중인 업체다. 대변 속 미생물 유전자를 분석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상태를 분석하고 25가지 질병의 위험도를 예측한다. 개인의 배변 습관이나 상태를 기록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건강 변화를 모니터링하고 맞춤형 헬스케어를 제공한다. 이 업체는 또 장내 미생물을 이용한 신약 개발을 추진해 내년 초 임상시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천랩 관계자 "우리가 강점이 있는 정확한 미생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다양한 파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개인의 식생활 변화나 생활습관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예방 차원의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건강한 사람의 장에 있는 균을 이용한 염증성 장질환 치료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며 "다른 사람의 대변을 이식하는 것은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균을 찾아서 신약을 개발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

기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