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인아 미안해" 어른들의 사과…반복할건가

기사등록 2021/01/13 16: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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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기상 기자 = 13일 오전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정문 앞은 소란스러웠다. '정인이' 입양부모 첫 재판을 방청하러 온 이들, '엄벌 촉구' 시위대, 경찰, 그리고 기자들이 한데 뒤엉켰다. 흐느낌과 안타까움, 탄식과 고성이 쉴새 없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지 않은 길가는 70개가 넘는 근조화환의 차지였다.

'정인아 미안해'.

근조화환에 가장 많이 적힌 형용사는 '미안해'였다. 돌아보면, 처음 근조화환이 늘어섰던 지난달 14일에도 '미안해'는 정인이를 향한 문구였다.

어른들이 정인이에게 사과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이 비극적인 사건이 알려진 직후다. 세 차례 학대 의심 신고가 들어왔던 것도 그때 알려졌다. 경찰은 물론 홀트아동복지회, 강서아동보호전문기관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보도들도 그때 나왔다.

하지만 책임 있는 기관의 공식적인 유감 표명은 1월2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방영되고, 대중의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에야 나왔다. 이후 고작 일주일 사이 문재인 대통령의 정인이 사건 언급, 경찰청장의 대국민사과, 서울 양천경찰서 서장과 여청과장의 대기발령, 홀트의 사과문 게재 등이 이어졌다.

이런 모습이 진심으로 정인이에게 미안해서가 아닌 대중, 유권자를 의식한 '마지 못해 하는' 행위로 보이는 이유이다. 만일 지상파 인기 프로그램이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면, 그래서 시민들의 분노가 지금과 같이 증폭되지 않았다면 같은 장면이 연출됐을까. 이런 의심마저 든다.

그래도 그 덕에 누군가는 책임을 떠안고 자리에서 물러났고, '정인이 사건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으니 그걸로 된 것 아닐까 하는 위안도 해본다.

부모의 징계권을 삭제하는 민법 개정안과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의 신고가 접수되면 수사기관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는 법안 등이 현실화됐다. 여당은 아동학대 관련 예산 및 인력확보 등 후속 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그런데 임시방편으로 막은 둑이 터지듯, '땜질처방'에 대한 비판이 벌써부터 나온다.

정인이가 받은 단 하나의 혜택이 있다면, 그것은 여러 번의 신고다. 그렇지만 신고는 매번 다른 경찰관에 배당됐고, 마지막 진료 의사는 다수의 신고가 있었던 사실조차 몰랐다. 정인이가 겪은 일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제2·제3의 정인이를 우리는 또 잃어야 한다.

그래서 사과는 반드시 정인이를 향해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당장 눈앞에서 들끓는 대중의 분노를 잠재우려는 법안·대책·사과는 "이 정도면 됐다"는 안도로 이어질 수 있고,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다. 이 걱정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공감언론 뉴시스 wakeup@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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