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 옷걸이 8천개가 구부러지자 단색화가 됐다...최병소 개인전

기사등록 2020/11/25 15:36:10

최종수정 2020/12/07 10:18:37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서 개인전

'意味와 無意味 1974 to 2020'전

[서울=뉴시스] 최병소, 016000, 2016, Hanger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size: 730 x 430 cm)
[서울=뉴시스] 최병소, 016000, 2016, Hangers, Dimensions variable (installation size: 730 x 430 cm)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전시장 바닥을 가득 채운 건 옷걸이다. 흔하게 보는 세탁소 철제 옷걸이. 그 한 개를 즉흥적으로 구부려 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8000여개가 모여 바닥에 눕자 옷걸이들은 작품이 됐다. 세로 7m, 가로 4m를 덮은 하얀 옷걸이들은 구부러진 백색의 드로잉(선)으로, 더 나아가 입체적인 단색화로 펼쳐진다. 

설치작가 최병소(77)가 2016년에 만든 작품이 다시 전시장에 등장했다.

서울 삼청로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은 26일부터 최병소의 개인전을 선보인다.

 '意味와 無意味 SENS ET NON-SENS: Works from 1974 to 2020'라는 전시 제목으로 작가의 1970년대 작품과 최근의 작품을 병치시켜 소개한다.

전위적 한국 실험미술의 태동과 단색화의 경향을 관통하고 있는 최병소 작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전시다.

전시 제목 '意味와 無意味 SENS ETNON-SENS'는 작가의 작품 '무제'(1998)에 사용된 메를로 퐁티의 저서(1948)에서 가져왔다.

최병소의 작업 세계는 이성과 논리 세계의 무의미함을 주장하고 경험과물리적 경험성의 중시를 주장했던 메를로 퐁티의 세계관과 그 맥이 닿아 있다는 것.

“20세기 전반부 예술의 지지체였던 팽팽하게 고양된 캔버스의 평면성과 그 조건 위에서 추구되었던 일루져니즘의 미학을 부정한다”는 최병소의 작업의 바탕에는 반예술적 태도가 깔려있다. 

[서울=뉴시스] 최병소, 意味와 無意味 SENS ET NON-SENS 설치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0
[서울=뉴시스] 최병소, 意味와 無意味 SENS ET NON-SENS 설치 전경,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20

1943년생 최병소 작가가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활동을 시작했던 1970년대다.  5.16 군사 정변과 유신체제에 대한
정치적 좌절감, 그리고 새마을운동으로 경제적 안정과 희망을 동시에 경험했던 시대였다.

군부독재 하의 상황 속에서 실험적 작업과 전시들은 제재와 억압을 받았다. 사회적 불평등과 부조리를 직시해야 하는 예술가들은 당시 실험적인 정신을 실천하며 단색화와 실험 미술 사이의 경계 사이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만들어냈다.

최병소도 동참했다. 그는 신문지, 연필, 볼펜은 물론이고 의자, 잡지 사진, 안개꽃 등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물건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매체의 순수성, 형식주의 모더니즘과 같은 미술의 위계를 전복시킨다.

과거 작가의 대구 작업실이 침수되어 1970-80년대에 제작된 작품 대부분이 유실 또는 파손되었는데,이번 전시에서는 현재 남아있는 1970년대 사진 작품으로는 유일한 두 작품을 소개한다.

[서울=뉴시스] 최병소, Untitled 975000 (part of 4 photography), 1975, photography, 53 x 38 cm ⓒ CHOI Byungso and Arario Gallery
[서울=뉴시스] 최병소, Untitled 975000 (part of 4 photography), 1975, photography, 53 x 38 cm ⓒ CHOI Byungso and Arario Gallery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 사진을 이용해 만들어진 '무제 9750000-1'(1975)과 의자 위에 사물을 놓고 촬영한 사진과 문자를 결합한 '무제 9750000-2'(1975)는 사진의 시각 이미지를 언어로 해석 또는지시해 놓는 작품이다.

최병소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는 신문 지우기 연작 또한 그가 평생을 매진해온 실험적 정신의 실천이다. 재료비가 거의 들지 않은 일상의 사물을 지지체와 화구로 선택해 탄압의 대상이었던 신문을 까맣게 지우며 사회에 대한 저항의 몸짓을 기록해 나갔다.

아라리오갤러리 주연화 디렉터는 "최병소의 신문 지우기 작업은 자신을 지우는 움직임으로 읽어볼 수 있다"며 "일상의 물건을 작업에 사용해 한국 사회를 살아가던 최병소 개인과 예술가의 열망을 표현하는 방식은 옷걸이 현장 설치 작품 '무제 016000'(2016)으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예술이란 무엇이고 반예술이란 무엇인가. 최병소의 실험적 미술은 하찮은 물건과 행위 모두 그 시대의 본질로 예술가가 어떻게 바라보느냐 '의미의 차이'가 만들어낸 시대의 산물이다. 전시는 2021년 2월27일까지.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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