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재수사 받는 손정우…'면죄부' 더는 안 된다

기사등록 2020/07/13 18:06:32

[서울=뉴시스] 고가혜 기자 = '다크웹'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수천여개를 배포한 혐의를 받는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4)씨에 대해 서울고법 형사20부(부장판사 강영수)가 미국송환 불허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손씨의 인도대상 범죄는 네트워크 기반 범죄이므로, 손씨가 반드시 미국에서 처벌받아야만 하는 건 아니라고 봤다. 또 손씨에 대한 국내 수사를 이어가고, 이를 토대로 웰컴투비디오 회원들까지 '발본색원' 하려면 대한민국이 직접 신병을 확보하고 형사처벌 권한을 행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손씨의 범행을 'n번방의 시초'라고 부르며 그 수법에 분노해 온 국민은 법원의 인도불허 결정에 결국 폭발했다. 법원 앞에서는 피켓 시위가 이어지고, 재판장을 대법관 후보에서 끌어내려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그러나 손씨가 범행에 비해 합당한 처벌을 받지 못한 책임이 오로지 인도불허 결정을 내린 법원에게만 있을까.

법원의 결정문에 따르면 검찰은 2년 전 아청법 위반 등 혐의로 손씨를 기소할 당시 이미 가상화폐 등으로 벌어들인 범죄수익을 따로 파악해 환수·추징보전까지 했지만,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를 별도로 구분해 기소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법원은 범죄인 인도 심문 과정에서 검찰에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미 미국과 공조를 통해 가상화폐 계좌와 자금의 흐름을 충분히 파악한 수사기록이 있는데 왜 기소를 하지 않았냐는 것이다.

검찰은 "미국처럼 상당한 수사기법을 동원해 추적하지 않으면 (범죄수익을) 밝혀내기 어렵다"거나 "처음 경찰에서 송치될 때부터 범죄수익은닉에대한 의견 송치는 전혀 없었다"는 등의 해명을 내놓았다.

수사기법이 미국에 비해 부족하다거나 경찰이 송치하지 못해 수사하지 못했다는, 책임 회피와 변명에 가까운 검찰의 답변은 재판부를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검찰의 분리 기소와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한 불기소 내지 기소 유보로 인한 불이익을 (손씨에게) 감수하게 하는 것은 비인도적 범죄인 인도, 이중처벌 논란을 야기해 다소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만약 검찰이 손씨의 아청법 관련 재판이 끝나기 전에 추가 기소를 했다면, 과연 손씨는 징역 1년6개월로 형을 마칠 수 있었을까. 헤어나올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의 굴레를 조금은 피해갈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미국과 한국에서 손씨에게 내릴 수 있는 최대 형량을 비교하자면 사법부의 결정에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이미 결정은 내려졌고, 손씨는 한국에 남게 됐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수사기관이 철저하게 손씨의 남은 혐의를 수사해 최대한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 뿐이다.

법원의 인도불허 결정에 따라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한 재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위해 지난 7일 이 사건을 원래 사건 처분 부서인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유현정)에 재배당했다.

이어 지난 8일에는 경찰과의 협의를 통해 해당 혐의에 대한 추가 수사를 경찰청(본청)에 지휘했다. 경찰은 이르면 이번 주 고발인인 손씨의 부친을 불러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재판부는 "(불허) 결정이 범죄의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라며 "앞으로의 수사 과정에 손씨는 적극 협조하고 정당한 처벌을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아직 기회는 남아있다. 경찰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 법원의 적정한 양형으로 이번 인도불허 결정이 정말 손씨에게 '면죄부'가 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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