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 푸드]'싱싱한 해산물 왕국' 남해 바다 '주연' 꿰찬 죽방렴 멸치

기사등록 2020/06/30 05:01:00

15세기 문헌에도 있던 원시어업 이지만 상처없어 10배 비싸

쌈밥, 회무침 등 매콤달콤한 맛에 젊은이들 입맛도 사로잡아

열량, 지방 적고 단백질 65% 다이어트식…칼슘은 우유 22배

"싱싱한 대멸치에 사람 사랑하는 마음이 더하면 최고의 음식"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인근 바닷가에 위치한 죽방렴 모습.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인근 바닷가에 위치한 죽방렴 모습. 2020.06.19. [email protected]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자작한 국물을 한 숟갈 떠서 하얀 쌀밥에 쓱쓱 비벼 먹으면 그 감칠맛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특히 살이 올라 통통한 멸치를 한 젓가락 집어, 야들야들한 상추에 올려놓고 마늘장아찌 한 톨과 쌈을 싸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맛의 조합이 탄생한다.

고소하다고 해야 할까. 얼큰하다고 해야 할까.

그 짭조름함과 당기는 매콤함, 봄에 잃은 입맛을 되찾게 하는 멸치쌈밥. 그 맛의 조합은 숟가락을 놓지 못하게 하는 밥도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멸치쌈밥은 가난했던 시절엔 서민들의 음식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해협을 지나다 보면 푸른 바다위에 V자 모양으로 펼쳐진 대나무 울타리를 볼 수 있다.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쌈밥.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쌈밥. 2020.06.19. [email protected]
특이하게 생긴 이 대나무 울타리는 물고기가 다니는 길을 막아 고기를 잡는 원시어업 형태의 함정어구인 죽방렴이다.

남해의 죽방렴은 통말목을 V자 모양으로 수중바닥에 고정하고 대나무로 된 날개그물을 통발목을 따라 설치한 후 꼭짓점에 원통모양의 자루그물을 설치해 고기를 잡는 일종의 정치망 어구다.

죽방렴은 1469년(예종 1년)에 작성된 ‘경상도 속찬지리지’의 ‘남해현조편’에 기록이 남아있을 만큼 지역 문화재로서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문화재청도 남해군 지족해협 죽방렴을 국가중요어업유산, 문화재청의 명승 71호와 국가무형문화재로 각각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죽방렴이 위치한 지족해협은 남해군 지족리와 창선도 사이의 해협으로 폭이 좁고 물살이 빨라 어구를 설치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때문에 지족해협의 죽방렴에는 철마다 각기 다른 생선이 잡힌다. 하지만 남해 사람들은 죽방렴에서 잡히는 생선 중 으뜸으로 단연 멸치를 손꼽는다.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쌈밥.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쌈밥. 2020.06.19. [email protected]
특히 죽방렴은 그물이 아닌 대나무로 만든 어살을 이용해 멸치를 잡기 때문에 싱싱하고 상처하나 없는 원형 그대로의 멸치를 잡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죽방멸치는 예전부터 일반 멸치에 비해 많게는 10배 이상의 높은 가격으로 전국에 팔려나갔다.

하지만 이 귀한 죽방멸치라 해도 모양이나 크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것들은 판매할 수 없었다.

남해 사람들은 그것들을 모아 생멸치 조림을 해 먹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멸치쌈밥의 시초라 할 수 있다.

◇ 5~6월 부터 남해바다로 찾아오는 죽방렴의 대 멸치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회무침.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회무침. 2020.06.19. [email protected]
남해는 따뜻한 날씨 탓에 사시사철 멸치가 잡힌다. 죽방렴에서 잡히는 멸치는 그 종류가 다양하다. 특히 봄이 한창인 5월과 신록이 물드는 6월이면 죽방렴에서는 대 멸치가 나기 시작한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대멸, 중멸, 소멸, 자멸, 세멸치 등으로 불리고 생산지역에 따라 메루치, 멸, 행어, 멸오치, 열치라고 불리어진다.

멸치쌈밥에는 대 멸치라고 불리는 굵고 큰 멸치가 사용된다. 특히 이맘때 생산되는 대 멸치는 뼈가 부드러워 연하고 살이 두터워 뼈째 요리를 하는 멸치쌈밥용으로는 제격이다. 

또 대 멸치는 열량과 지방이 적고 65%가 단백질로 이루어져 있어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으며 우유에 22배에 달하는 칼슘이 들어있어 어린이 성장발육과 여성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혈중 중성지방을 줄이는 효과가 있어 혈액을 맑게 유지시키는데 효능이 있다고 전해진다.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회무침.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에서 판매하는 멸치회무침. 2020.06.19. [email protected]
◇ 멸치쌈밥엔 갈치육수와 마늘쫑이 최고의 궁합

생멸치조림을 요리하기 위해서는 먼저 조림에 들어갈 멸치를 깨끗이 씻어 대가리와 내장을 제거해야한다.

조림에 생멸치 대가리가 들어가면 씹는 맛을 제대로 살릴 수 없고 내장은 쓴맛을 돌게 해 먹기 부담스럽게 만든다.

조림에 들어갈 육수는 흔히 가정에서 쓰는 멸치육수면 충분하지만 특히 쌀뜨물을 사용하면 간편하면서도 비린내를 제거하는데 도움이 된다. 일부 멸치쌈밥 전문점에서는 깊은 국물 맛을 내기 위해 갈치육수를 사용하기도 한다.

생멸치조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쌀뜨물이나 육수에 시래기와 마늘, 대파 그리고 고춧가루를 듬뿍 풀어 끓이다가 깨끗하게 손질된 생멸치를 넣고 자작자작하게 졸여주면 된다.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멸치쌈밥 거리.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멸치쌈밥 거리. 2020.06.19. [email protected]
이때 간은 액젓이나 집 간장으로 맛을 내야 생멸치 조림의 풍미를 살릴 수가 있다.

특히 남해사람들만의 멸치쌈밥 레시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 하나를 꼽자면 마늘쫑을 들 수 있다.

대멸치가 가장 맛이 오를 시기에 함께 출하되는 마늘쫑은 남해의 대표적인 특산물 중 하나로 멸치쌈밥의 식감을 다채롭게 하는 주연급 조연이다.

이렇게 완성된 생멸치 조림을 상추와 곁들어 내면 바다 내 음과 봄 내 음 그리고 감칠맛이 어우러진 영양만점 멸치쌈밥요리가 된다.

진주시에 거주하는 A(50)씨는 "가족과 함께 남해에 들릴 때면 빠지지 않고 지족마을을 찾아 멸치쌈밥을 즐긴다"며 "영양만점의 멸치쌈밥은 입맛 떨어지는 봄철 잃어버린 입맛을 찾고 건강까지 챙길 수 있어 우리가족 건강을 책임지는 웰빙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19일 오전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 홀에는 A4지에 손님들이 남긴 후기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19일 오전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 홀에는 A4지에 손님들이 남긴 후기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2020.06.19. [email protected]
◇ 미식가 입맛 사로잡는 ‘멸치회무침’ 막걸리가 식재료로

멸치쌈밥과 함께 남해 사람들이 즐겨 먹었던 멸치 요리 중에는 멸치회무침이 있다.

멸치회를 접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멸치도 회로 먹어?”라는 질문을 던지기 일쑤지만 멸치회무침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그 부드럽고 탱탱하고 쫀득쫀득한 식감에 빠져들게 된다.

‘한번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멸치회무침은 내장과 함께 뼈를 발라낸 멸치를 막걸리에 담가 비린내를 제거한 후 미나리, 오이, 양파, 고추 등 싱싱한 야채와 함께 초고추장에 넣어 무쳐낸 음식이다.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19일 오전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 주방에서 이순심(여·76)씨가 멸치쌈밥을 요리하고 있다.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19일 오전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 주방에서 이순심(여·76)씨가 멸치쌈밥을 요리하고 있다. 2020.06.19.  [email protected]
싱싱한 멸치의 살과 아삭한 야채가 시큼한 초고추장과 어우러져 매콤, 새콤한 맛을 내는 멸치회 무침은 멸치쌈밥과 함께 미식가를 사로잡는 계절음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 영양 만점의 멸치요리와 최상의 궁합 ‘상추’

구수하고 매콤한 생멸치조림과 샘콤 달콤한 멸치회무침의 맛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들어주는데 빼 놓을 수 없는 한 가지 바로 상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각종 푸성귀 잎에 밥과 쌈장을 얹어 싸먹는 것을 좋아한다. 배춧잎, 깻잎, 미나리, 쑥갓, 미역, 김, 심지어 묵은 김치를 씻어 쌈을 싸 먹을 정도로 쌈을 즐긴다.

상추는 매운 음식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생멸치조림과 멸치회무침의 매콤함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한다. 또 음식의 씹는 식감을 살려 전체적인 고소한 맛을 끌어 올려주는 역할도 하게 된다.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19일 오전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 주방에서 이순심(여·76)씨가 멸치회무침을 만들고 있다. 2020.06.19.  con@newsis.com
[남해=뉴시스] 차용현 기자 = 19일 오전 경남 남해군 삼동면 지족마을 우리식당 주방에서 이순심(여·76)씨가 멸치회무침을 만들고 있다. 2020.06.19.  [email protected]
멸치요리는 상추와 함께 먹어야 한다는 공식은 이런 이유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상추에는 락투카리움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어 진정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칼슘의 왕 멸치와 상추가 만나 조화를 이루면 숙면은 물론 영양소까지 충전시켜 활기찬 하루를 보내도록 해 준다.

◇ 멸치요리로 이름 난 남해 지족마을

남해군 지족마을은 남해도와 창선도를 잇는 지족대교 인근에 위치하는 작은 시골마을로 죽방렴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지족마을에는 10여 곳의 크고 작은 멸치음식점이 모여 있어 남해식의 멸치음식을 맛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46년째 이곳에서 우리식당이란 멸치쌈밥집을 운영하고 있는 이순심(여·76)씨는 "멸치쌈밥의 맛은 싱싱한 식재료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특히 지족마을은 죽방렴이 있어 사시사철 싱싱한 멸치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더욱 더 맛있는 멸치 요리를 손님들에게 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음식의 맛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먹기에 달렸다. 아무리 좋은 식재료가 있다 해도 만드는 사람의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깊은 맛을 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음식을 파는 일은 사람이 좋아서 시작했고 그 이유로 여태껏 하고 있다"며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어떤 조미료보다 음식의 맛을 더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뉴트로는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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