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힘 실어준 국민연금…항공업계 위기 고려했다

기사등록 2020/03/26 17:21:59

코로나19 위기 봉착…"배 가라앉는데 선장 바꾸면 안 돼"

사모펀드 KCGI 불확실…ISS·KCGS 의결권자문사도 '한 몫'

이날 수탁위 회의 자료에 '반대 권고' 의결권자문사 빠져

[서울=뉴시스] 류병화 기자 = 국민연금이 KCGI 등 3자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손을 들어준 가운데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반대표를 던졌던 것과 달리 조원태 회장에 힘을 실어준 이유로는 현재 항공업계가 상당한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내부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으로 파악된다.

아울러 3자연합이 제기한 대한항공 리베이트 의혹을 확인하기 어렵고 3자연합을 지지한 의결권자문사가 공정성 시비로 국민연금 회의 자료로 올라오지 못하면서 승기가 조 회장 측으로 확실히 기운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수탁위)는 오는 27일 열리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찬성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했다고 26일 밝혔다. 사외이사 선임안은 이사회 측 후보를 찬성하고 대체로 3자연합 측 후보를 반대했다.

수탁위는 한진칼 사내이사 선임 안건 중 한진칼 이사회가 올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하은용 대한항공 부사장과 3자연합 측이 올린 김신배 전 SK 부회장에 대해 찬성을 결정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이사회가 올린 사외이사 안건에 대해 모두 찬성을 행사한 반면 3자연합 측이 상정한 안건에 대해 대부분 반대를 행사했다. 수탁위는 한진칼의 전체 인력 대비 이사회의 규모가 지나치게 비대해질 것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3자연합 측이 올린 이사 선임안 가운데 김신배 전 SK 부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과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의 사외이사 선임안만 국민연금의 찬성표를 받았다. 국민연금은 이들에 대해 이사회 견제, 능력 면에서 입성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원태 확실히 밀어준 국민연금…'배 가라앉는데 선장 바꾸면 안 된다'

국민연금 수탁위가 적극적으로 한진칼 이사회 측에 힘을 실어준 배경으로는 대한항공을 포함한 항공업계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항공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입국 제한 확대, 일부 운항 중단, 여객·여행 수요 급감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업계는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3월 둘째주 항공여객은 전년 대비 약 91.7% 감소했을 정도로 극심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영진을 교체하는 결정을 내린다면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주주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인천공항=뉴시스] 고범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해외여행객이 급감하고 2001년 개항 이래 첫 1만명대 이하로 떨어진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를 알리는 전광판에 많은 빈칸이 보이고 있다. 25일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전날 인천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총 9316명(출발 1800명, 도착 7516명)으로 집계됐다. 2020.03.26. bjko@newsis.com
[인천공항=뉴시스] 고범준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해외여행객이 급감하고 2001년 개항 이래 첫 1만명대 이하로 떨어진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체크인 카운터를 알리는 전광판에 많은 빈칸이 보이고 있다. 25일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전날 인천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총 9316명(출발 1800명, 도착 7516명)으로 집계됐다. 2020.03.26. [email protected]
한 수탁위 위원은 "조 회장을 포함해 경영진을 교체할 정도로 초강수를 둘 만한 결격사유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항공업계가 엄중한 위기 상황이라는 데에 수탁위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해 한 건에 대해서도 표결까지 가지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대한항공이 지난해 항공업권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등 아직까지 조 회장의 리더십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며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선장을 바꿔선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ISS·KCGS 의결권자문사도 '한 몫'…사모펀드 KCGI 이탈 가능성도

국민연금이 의안 분석 자문 계약을 맺고 있는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등이 조 회장의 연임에 찬성을 권고했던 것도 조 회장의 승기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열린 수탁위의 회의 자료에는 조 회장 연임을 권고한 ISS와 기업지배구조원의 의안 분석 자료가 포함된 반면 연임에 반대 권고한 서스틴베스트의 자료는 포함되지 않았다. 회의 자료는 건별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살펴보기 어려운 수탁위 비상근위원들의 판단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국민연금은 보유 주식 의결권을 기금운용본부 산하 투자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행사하지만 기금운용본부가 판단하기 곤란한 안건이나 수탁위가 회부 요청한 안건은 수탁위에서 결정된다.

이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회의 자료를 작성해 수탁위로 전달하게 되는데, 이때 서스틴베스트 자료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스틴베스트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이력을 이유로 반대를 권고했지만 대표이사와 KCGI 대표와의 친분, 일관성 부재 등의 문제가 거론되며 회의 자료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더불어 3자연합 측이 제기한 대한항공의 리베이트 의혹을 확인하기 어렵고 사모펀드가 엑시트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워 수탁위의 판단에 불리한 요소로 작용했다.

아울러 3자연합은 이달 들어서만 대한항공 리베이트 의혹 제기를 시작으로 대한항공 자가보험 등 의결권행사 금지 가처분 신청, 조원태 회장의 한진칼 사내이사 선임을 찬성한 의결권 자문사 권고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지만 확실한 근거가 부족하고 사모펀드의 이탈 가능성 등이 거론되며 불리하게 작용했다.

또 다른 수탁위 위원은 "서스틴베스트가 어떤 이유로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영세하고 공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라며 "더불어 리베이트 의혹에 관해서 확실하게 판단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점 등이 3자 연합 측에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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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태 힘 실어준 국민연금…항공업계 위기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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