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강권순&송홍섭 "정가 연주의 틀을 만들어 뿌듯"

기사등록 2019/11/08 06:00:00

우리시대 최고 여창가객과 베이시스트 만남

협업 앨범 '지뢰 (地籟) : 사운드 오드 더 어스' 발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셰익스피어 '리어왕'도 해봤는데, 저 멀리만 다닌 것 같아요. 대한민국 지금 시공간에 있지는 못했죠. 대중음악은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숨 쉴 수 있는 장르인데,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국악계에서 가장 진보한 예술가로 통하는 여창가객 강권순(50)이 뜻밖의 고백을 했다. 그녀는 한국 전통 성악곡 양식인 '정가'의 맥박을 쥐고 있는 인물. 세계 곳곳에서 우리 음악을 알린 것은 물론 컴퓨터음악과 협연하는 등 실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의 예술적 평가와는 달리 대중과는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는 것이 강권순의 냉철한 자가진단이다. 세계 곳곳을 돌며 우리음악을 알렸는데, 정작 일상에서 우리음악을 알리는 일에는 소홀했다고 판단했다. 밴드 '사랑과 평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 베이시스트 송홍섭(65)에게 S.O.S를 보낸 이유다.

국가 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이수자인 강권순과 송홍섭이 이끄는 '송홍섭 앙상블'의 협업 앨범 '지뢰 (地籟) : 사운드 오드 더 어스(Sound of the earth)'는 올해의 역작이라 할 만하다.

타이틀곡 길군악을 비롯해 수양산가, 계면조 편수대엽, 계면조 중거, 우조 이수대엽, 휘모리시조 등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정악이 귀에 척척 감긴다.

가평뮤직빌리지에서 기획한 음악역1939 첫 프로젝트다. 정악(정가)과 재즈가 절묘하게 결합, 한국 음악사의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email protected]

서수진(드럼), 남메아리(건반), 박은선(건반2) 등의 연주자가 참여해 가평뮤직빌리지에서 원테이크 라이브레코딩으로 녹음했다. 관객에게 녹음과정을 공개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가미된 앨범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송홍섭이 정악의 정간보(격자무늬 칸의 우리 악보)를 양악보로 정리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세계 어떤 연주자로 우리 정가를 연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최근 부암동에서 강권순과 함께 만난 송홍섭은 "이번 작업에서 가장 크게 만족한 것은 정가 연주의 틀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라고 뿌듯해했다.
 
"정악은 시그니처가 특이해요. 박자가 복잡하죠. 4분의 30박자, 8분의 48박자 등이죠. 또 다른 장르의 음악은 블록을 하나 발견하면 쉽게 반복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정악은 그 블록이 조금씩 엇나가는 거예요. 제가 만든 리듬을 해치지 않게 수용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은 작업에 몰두했죠. 우리 음악에 화성이 없어 누구나 공감을 할 수 있는 화성을 만들어놓기도 했죠. 코드와 멜도디가 부딪히기도 하는데 무난히 완성된 것 같아요."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email protected]
이에 따라 세계 어느 나라 연주자들이 해당 악보를 통해 정가에 접근할 수 있다고 자부했다. "우리 정악을 아프리카 연주자들도 연주할 수 있는 거죠. 연주자들을 계속 바꿔가면서 실황 연주를 하고 싶어요. 다양한 음악이 기대됩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2017년 3월. '사물놀이 대가' 김덕수가 '아리랑 프로젝트'를 결성, 각 장르의 대가를 모아 어벤저스 밴드를 결성했을 때 만났다.

당시 강권순은 송홍섭이 나눠준 악보를 보고 연주자들이 바로 합을 맞추는 과정이 놀라웠다고 했다. 정악에서도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단다.

강권순의 협업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국악을 몰랐던 송홍섭은 자기 방식으로 틀을 만들어나갔다. 국악의 음계 대신 서양의 평균율을 썼고, 국악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 작업 과정에서 유일한 희망의 끈은 "감정적으로 링크하는 것"이라고 송홍섭은 돌아봤다. "음악이 어울리면 되는 거잖아요. 서양 음악처럼 깨끗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 묘한 조합이 따랐죠. 강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정악은 '악기가 호흡을 멈추면 시간도 멈춰야 한다'고 말씀 하셨는데 그 멈춤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 것 같더라고요."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 국악인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 국악인이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email protected]
서양음악이 동영상이라면 정악은 스냅사진이 되는 것이다. 송홍섭은 다만 "다음에는 국악기 사용과 평균율에 없는 음을 쓰는 것이 차후의 숙제"라고 여겼다.

강권순은 이번 작업이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자연배음을 활용한 순정률에 의존하다, 평균율에 맞춰 소리를 내다 보니 음악적인 조화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역시 송홍섭의 생각처럼 "음이 꼭 맞아야 하는 것만이 아니구나"라며 감정적 화음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송홍섭은 작년 가평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대표로 취임하면서 K팝 이후의 장르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털어놓았었다. 이번 앨범이 그 고민의 산물인 셈이다.

김월하(1918∼1996) 명창의 직계 제자 중 한명인 강권순은 2005년 호주 멜버른 페스티벌에서 혼자 가곡으로만 무대를 채우는 등 K팝과 다른 방식으로 한국 음악을 알려왔다.

강권순은 "제가 전통을 전수해야할 책임감을 갖는 나이가 되면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고 싶었다"면서 "표현력이 꽃 피울 시기에, 더 늦지 않게 실험을 하고 싶었어요. 대중이 오래되고 재미없게 느끼는 음악을, 지금의 포맷을 통해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31. [email protected]
하지만 정악은 어느 장르보다 뜨거운 음악이다. 강권순이 가곡을 부르는 순간 눈물을 흘리지 않는 관객이 없을 정도다. 이번 음반을 녹음하면서도 스태프, 관객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권순은 "사실 우리 음악에는 뜨거운 에너지가 있어요. 어렵고 재미없고 졸린 음악이 어니라, 오래돼 그 만큼 편안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바랐다. 송홍섭도 "우리 음악이 가진 가능성이 크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폭발적인 어감을 지닌 이번 앨범의 제목 '지뢰'의 속뜻은 '땅의 소리'다. 2004년 가야금 명인 황병기가 극찬한 여창 가곡 음반 '천뢰, 하늘의 소리'를 내놓기도 한 강권순은 "정가는 '바른 노래'라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옛날 양반 사이에서 수신의 음악이었어요.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음악이었던 거죠"라고 설명했다.

천뢰, 즉 '하늘의 소리'에 이어 이번에 '땅의 소리'를 들려준 강권순은 시리즈를 이을 음반을 구상 중이다. 인뢰, 즉 '사람의 소리'다. "이번 음반은 사람이 밟고 있는 땅의 소리이었어요. 다음에는 그 땅을 밟은 사람의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범준 기자 = 강권순(오른쪽) 국악인과 송홍섭 베이시스트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아트포라이프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10.31. [email protected]

이번 앨범 '지뢰'의 커버를 넘기면, 커다란 돌덩어리 사진이 보인다. 강권순은 "우주에서 떨어진 돌덩어리가 저처럼 느껴져요. 구르고, 사람들 발에 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예술가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이라며 웃었다. "그래서 서태지, 방탄소년단 같은 분들에게도 고마워요. 우리 음악을 널리 알려주셨잖아요. 정악도 그렇게 앞으로 널리 알려가고 싶어요."

강권순과 송홍섭은 10, 11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열리는 '제9회 서울레코드페어'에서 쇼케이스 무대를 펼친다. 12일에는 포털사이트 네이버 온스테이지 무대에 오르고 13일에는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에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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