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인들은 왜 에르도안에 열광하나

기사등록 2016/08/14 06:00:00

최종수정 2016/12/28 17:30:17

【이스탄불=AP/뉴시스】터키 이스탄불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반쿠데타 집회에 약 100만명이 참가해 터키의 붉은 국기를 흔들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있다. 2016.08.07
【이스탄불=AP/뉴시스】터키 이스탄불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반쿠데타 집회에 약 100만명이 참가해 터키의 붉은 국기를 흔들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있다. 2016.08.07
【서울=뉴시스】최희정 기자 = “에르도안, 당신은 신이 주신 선물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 남부 예니카프 해변에서 정부 주도로 열린 ‘민주주의와 순교자를 위한 집회’는 수많은 참가자들이 흔드는 터키 국기로 붉은 바다를 이뤘다. 그 중에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신의 선물'로 극찬하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도 있었다. “우리에게 죽음을 명하면 바로 실행하겠다”며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충성을 언약하는 문구의 플래카드도 휘날렸다.

 이날 시위는 쿠데타 발발 이후 터키의 인권탄압 및 독재주의 강화 행보를 비판하는 유럽과 쿠데타 배후세력인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인도하지 않는 미국을 향해 격노하는 에르도안의 힘을 과시하는 성격이 짙었다. 터키 당국은 이날 쿠데타 반대 집회에 참석한 인원을 500만여 명으로 추산했다.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시민들

 지난 달 15일 군부 쿠데타 때 시민들은 에르도안 대통령을 비호했다. 에르도안은 쿠데타 직후 CNN튀르크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거리로 나가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에게 국민 여러분의 답을 알려줘라”고 했다. 트위터에서도 “국민 모두 광장과 공항으로 나가 (쿠데타 군인과) 맞서라”고 호소했다. 이런 메시지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터키 전역으로 확산됐으며, 지지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맨몸으로 군인들과 맞섰다. 시민들이 발벗고 거리로 나선 덕분에 상황이 반전될 수 있었다.

 쿠데타가 진압된 직후인 지난 달 20일 터키 국기를 온 몸에 휘감은 에르신 코르크마즈(29)란 이름의 공무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에르도안은 ‘정복자’ 메흐멧 2세 이후 최고의 지도자다”고 치켜세웠다. 메흐멧 2세는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해 본격적으로 오스만투르크의 시대를 열었던 술탄이다.

 터키 시민들의 이 같은 반응은 에르도안 정부가 독재주의 행보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란 점에서 서방 세계는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현재 터키 정부는 쿠데타 가담자 색출을 명분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숙청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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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AP/뉴시스】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부인 에미네 여사가 이스탄불에서 7일(현지시간) 열린 반쿠데타 집회에 참석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에미네 여사는 이슬람 신정체제를 강화하려는 남편의 뜻에 따라 공식석상에서 항상 머리를 스카프를 가리고 있다.  2016.08.07
 최근엔 오스트리아 크리스티안 케른 총리가 ‘수준 미달’이라며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을 공식 반대했으며, 오스트리아 극우성향 자유당 대표는 “터키가 나치처럼 정치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자유당의 하인츠 크리스티안 슈트라헤 대표는 터키 쿠데타와 에르도안 대통령의 진압 과정이 히틀러의 권력 강화 수단으로 사용한 ‘라이히슈타크(독일 제국의회) 방화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며 날을 세웠다. 1933년 2월 총리로 취임한 아돌프 히틀러는 화재사건을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규정하고, 이를 계기로 대대적인 탄압을 단행해 의회는 물론 독일 사회를 장악했다.

◇에르도안의 인기 비결은?

 터키 국민들이 에르도안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지난 10년 간 이룩한 경제적 발전이다. BBC에 따르면, 터키는 연평균 4.5%의 경제성장을 이뤄왔으며 제조업 및 수출 강국으로 발전했다.

 지난 2001년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5.7%였으나, 에르도안이 총리로 취임한 2003년 5.2%로 급반등했고, 이듬해에는 9.3%로 크게 올랐다.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4.8%로 떨어지긴 했지만 2010년 9.1%를 기록한 이후 비교적 양호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또 집권 정의개발당(AKP) 정부는 1990년대 100%를 웃돌았었던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도로와 교량, 전철노선 등 국가 인프라 구축 및 개선을 하고, 건강보험 체계도 강화했다.

 터키에서 운전 기사로 일하는 칸카야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에르도안이 집권하기 전에는 신장질환을 앓고 있는 모친이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으나, 현재는 1주에 3번 신장 투석을 무료로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에르도안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부터 중대한 경제적 변화를 볼 수 있다”며 의료관리, 교통체계, 노약자 보호, 인플레이션 억제 등을 예로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정치보다는 재정형편에 더 관심이 많은 유권자들이 에르도안을 지지하고 있다며, 에르도안 대통령과 AKP가 지난 15년 집권하면서 약 40~50%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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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AP/뉴시스】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이 9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콘스탄틴 궁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에게 기자회견장을 안내하고 있다. 2016.08.10
 그러나 에르도안의 인기는 단순히 경제적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가디언은 지난달 20일 '많은 터키인들이 권위주의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이유'란 제목의 기사에서 경제적 이유를 포함한 3가지를 언급했다.

 그 중 한 가지 이유는 서민층 및 하층(노동자 계급)이 에르도안을 자신들의 '대변자'로 여긴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AKP 깃발을 흔들던 이스마일이란 한 남성은 가디언에 “전직 대통령들은 국민을 존중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에르도안 대통령은 국민을 소중하게 여긴다. 이것이 에르도안 대통령을 우리와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여기는 이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거 국가 권력을 남용한 엘리트들로부터 현 에르도안 정부가 통제를 찾아오고 있다”며 “예전에는 국가 제도들이 반(反)국민적이었다면, 지금은 국민친화적이 됐다”고 덧붙였다.

 에르도안이 노동자 계층 출신이란 점도 서민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비결 중 하나이다. 터키의 흑해연안의 해안경비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용돈을 벌기 위해 레몬탄산음료와 참깨 빵을 이스탄불 거리에서 팔았다. 엠레 보즈쿠르트(22)란 이름의 한 지지자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차를 마실수 있다”며 “이런 점이 에르도안을 사랑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그를 보면 마치 자신을 보는 것처럼 여긴다”고 전했다.

 그런가하면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에르도안의 AKP 정부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시대 이후 소외됐던 보수적인 무슬림들을 대변한다는 점도 인기 비결이라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현대 터키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아타튀르크 대통령은 터키에 강력한 세속국가 기반을 닦았다. 터키 지식인들은 에르도안이 터키공화국의 이같은 정교분리 원칙을 깨뜨리고 이슬람 국가화하려는데 강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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