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환아정(換鵝亭) 70년만에 '재현'…선비의 상징적 누각

기사등록 2020/02/27 10:16:40

1395년 첫 건립…1950년 화재로 소실

현판 글씨 한석봉·기문 송시열이 써

[산청=뉴시스] 지난 1912년 산청공립보통학교 개교 당시 환아정의 모습.
[산청=뉴시스] 지난 1912년 산청공립보통학교 개교 당시 환아정의 모습.

[산청=뉴시스] 정경규 기자 = 경남 산청군이 선비의 상징적 누각인 '환아정(換鵝亭)'을 70년만에 재현한다. 환아정은 1395년에 지어진 뒤 소실과 복원을 거듭하다 1950년 화재로 사라졌다.

27일 산청군은 현재의 산청초등학교 현관 자리에 세워졌던 환아정을 새로 건립하는 재현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 사업은 산청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의 하나로 오는 3월 실시설계를 시작으로 2021년말 준공을 목표로 진행된다.

군은 산청초등학교의 역사자료와 옛 그림 등 관련자료를 바탕으로 소실된 환아정의 재현을 추진할 방침이다.

환아정은 1395년 당시 산청 현감인 심린이 산음현 객사의 후원으로 지은 정자다. 당시 자료를 보면 환아정의 현판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필 한석봉의 글씨를 달았는데 1597년 정유재란 때 환아정과 함께 왜구에 의해 소실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1608년 권순에 의해 복원됐는데 이때 우암 송시열이 기문을 적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송시열은 기문을 통해 “나는 아직 중국 회계의 산음은 가보지 못했는데 그 산수의 빼어남이 어디가 나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러나 그 이름을 가지고 사실을 구한다면 아마 서로 백중세를 이룰 것 같다”며 환아정과 경호강의 풍경을 예찬했다.

1950년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기 전까지 환아정은 산청군이 선비의 고장임을 알리는 상징적인 누각이었다. 옛말에 선비들이 환아정을 다녀가지 않으면 저승을 가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누각으로 전해진다.

특히 환아정이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는 전국 선비들이 이곳에 와서 지은 한시 120여개가 전시돼 있을 정도였다고 알려진다.

현재 가장 최근의 것으로 확인되는 환아정의 모습은 지난 1912년 산청공립보통학교 개교 기념엽서 사진을 통해 볼 수 있다.

[산청=뉴시스] 진재 김윤겸 영남기행화첩에 실린 산청 환아정(자료출처 문화재청).
[산청=뉴시스] 진재 김윤겸 영남기행화첩에 실린 산청 환아정(자료출처 문화재청).

한국주거환경학회가 지난 2014년 작성한 ‘산청 환아정 복원을 위한 문헌사적 고찰’ 논문에 따르면 환아정은 규모나 건축특징적인 면에서 정(亭)과 루(樓) 중 큰 규모의 건축물을 일컫는 루로 명칭되야 한다.

그러나 1395년 환아정이 지어질 당시 화산 권반이 중국 산음(山陰)과 이곳 산청의 옛 이름이 같다는 점에 착안, 서예가 왕희지가 중국 산음 땅에 사는 어느 도사의 청으로 ‘도덕경’을 써 주고 거위를 받은 ‘환아’의 고사를 취해 ‘환아정’이라 했다고 밝히고 있다.

산청 환아정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영남 3대 누각으로 손꼽힐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했다.

특히 지난 2017년 보물 제1929호로 지정된 ‘김윤겸 필 영남기행화첩’을 보면 경호강과 주변 산세가 어우러진 환아정의 모습이 소개돼 있는데 이 그림을 통해 규모와 형태를 비교적 자세히 확인 할 수 있다.

김윤겸은 문인화가인 김창업의 서자로, 1770년 진주지역에서 역참을 관리하는 찰방(察訪)으로 일할 때 작품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군 관계자는 “환아정이 재현되면 산청군이 가진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대에게 알려줄 수 있는 산청의 상징물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농촌중심지활성화 사업과 함께 환아정 재현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 되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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