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정국 3년] ④중앙청 일장기 내려지고 성조기 오르다

기사등록 2020/01/26 06:00:00

최종수정 2020/02/24 10:20:43

미군, 소련군 평양 진주보다 2주 늦게 서울 입성

미군 병사가 촬영한 생생한 서울 모습 단독 공개


해방정국 3년의 역사적 경험은 오늘날 한반도가 당면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준다. 과거의 실패를 성찰해야 현재의 과제를 파악할 수 있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광복 75주년을 맞아 새롭게 발굴된 사진과 문서를 중심으로 해방 직후 격동의 3년간을 매주 재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4. 미군의 서울 입성

1945년 9월 4일 미군 해군기 편대가 인천 상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군 상륙을 앞둔 정찰비행이었다. 4일 후인 8일 미군은 해군기의 엄호를 받으며 인천에 상륙했다. 미군은 일본군의 별다른 저항 없이 다음날 서울에 입성했다.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한 지 2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서울=뉴시스] 미 해군기 편대가 1945년 9월 4일 미군이 상륙할 인천 상공을 정찰 비행하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미 해군기 편대가 1945년 9월 4일 미군이 상륙할 인천 상공을 정찰 비행하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8일 미군 제24군단 소속 제7사단 17보병연대가 인천항을 통해 상륙하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8일 미군 제24군단 소속 제7사단 17보병연대가 인천항을 통해 상륙하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email protected]

9일 오후 4시, 25분간 조선총독부 제1회의실(중앙청)에서 연합군과 일본 측의 종전 협정에 대한 항복문서 조인식이 거행된 후 미군이 도열한 후 중앙청에 게양돼 있던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갔다. 35년간의 일제 통치가 공식 종식되는 순간이었다.

[서울=뉴시스] 미군이 1945년 9월 9일 오후 조선총독부가 자리 잡고 있던 중앙청에서 일장기를 내리고(왼쪽),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미군이 1945년 9월 9일 오후 조선총독부가 자리 잡고 있던 중앙청에서 일장기를 내리고(왼쪽), 성조기를 게양하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email protected]

처음 공개되는 영자신문 『The Seoul Times』(9월 5일 창간)의 9월 8일자 호외(號外)에 따르면 미군은 항복문서 조인식을 인천공회당에서 할 예정이었으나 후에 중앙청으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시스] 미군이 1945년 9월 8일 인천 상륙 전에 주둔 목적을 설명하고, 한국인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하지(John R Hodge) 사령관 명의로 배포한 전단.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경솔하거나 무분별한 행동을 자제하고, 미군정에 협조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미군이 1945년 9월 8일 인천 상륙 전에 주둔 목적을 설명하고, 한국인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하지(John R Hodge) 사령관 명의로 배포한 전단. 영어, 일본어, 한국어로 경솔하거나 무분별한 행동을 자제하고, 미군정에 협조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사진=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공) 2020.0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최초 공개된 1945년 9월 5일 창간된 영자신문 'The Seoul Times'가 이례적으로 “민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한글로 발행한 9월 8일 자 호외(號外). 내용은 1945년 9월 7일 오후 미군 연락장교 대표와 회견한 결과 내용을 담고 있으며, “상륙군은 신병이 많은 관계로 민중에 환호를 오해하고 소동으로 보면 의외에 사태가 발생 염려가 있으니 자중할 것”, “금일 오후 3시 상륙함에 있어 일본해군무관부 및 군사령관, 조선총독 등이 출영하게 되었다”, “국부 조인식은 인천공회당에서 할 예정이나 변경하야 조선총독부 내에서 거행할지도 모른다” 등 6개항이 담겨 있다. (사진=미디어한국학 제공) 2020.01.25.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최초 공개된 1945년 9월 5일 창간된 영자신문 'The Seoul Times'가 이례적으로 “민중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한글로 발행한 9월 8일 자 호외(號外). 내용은 1945년 9월 7일 오후 미군 연락장교 대표와 회견한 결과 내용을 담고 있으며, “상륙군은 신병이 많은 관계로 민중에 환호를 오해하고 소동으로 보면 의외에 사태가 발생 염려가 있으니 자중할 것”, “금일 오후 3시 상륙함에 있어 일본해군무관부 및 군사령관, 조선총독 등이 출영하게 되었다”, “국부 조인식은 인천공회당에서 할 예정이나 변경하야 조선총독부 내에서 거행할지도 모른다” 등 6개항이 담겨 있다. (사진=미디어한국학 제공) [email protected]

일본군 항복 행사가 끝난 후 미군은 중앙청을 나와 시가행진에 나섰고, 연도에서 수많은 군중의 환영을 받았다. 미군은 사전에 “상륙군은 신병이 많은 관계로 민중의 환호를 오해하고 소동으로 보면 의외의 사태가 발생할 염려가 있으니 자중할 것”이라고 통고했지만 거리로 나온 군중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9일 서울 시내 질서유지를 위해 거리에 나온 미군 제24군단 헌병들이 시민들과 함께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9일 서울 시내 질서유지를 위해 거리에 나온 미군 제24군단 헌병들이 시민들과 함께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9일 서울에 입성하는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서울 시민들이 트럭에 올라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9일 서울에 입성하는 미군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서울 시민들이 트럭에 올라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 [email protected]

이틀 뒤 미군 제24군단 사령관이자 한국주둔 미군사령관 하지(John R. Hodge) 중장은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나는 기왕의 용어를 빌어 말한다면 조선총독인 셈으로 특히 북위 38도 이남 조선에 있어서 여러 가지 시책을 펴기에 주력하겠다”며 “행정의 중점은 가급적 속히 조선정부가 수립되고 조선 사람이 조선을 다스려 주기를 원하는데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선의 자주독립은 “곧 되는 것은 아니고 당분간 어느 정도의 시간을 거쳐 적당한 시기가 도래한 후”에 가능하고 “이 적당한 시기라고 하면 곧 조선 안의 치안이 잘되고 못됨에 달렸다”라고 말했다. 전반적으로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낸 더글러스 맥아더(Douglas MacArthur) 원수의 포고문과 하지 사령관의 전단 내용을 반복한 것이었다.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11일 한국 주둔 미군사령관 하지(John R. Hodge) 중장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2020.01.26.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11일 한국 주둔 미군사령관 하지(John R. Hodge) 중장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다. (사진=미국 국립문서기록청) [email protected]

그러나 “잠정적 방편으로서 현존한 조선의 행정기관을 이용하려 한다”는 하지 사령관의 방침은 한국인들의 반발에 부딪쳤고, 미군은 서둘러 미 제7보병사단장 아치발드 아놀드(Archibald V. Arnold) 소장을 군정장관에 임명한 뒤, 20일 ‘재조선 미육군사령부 군정청’의 성격·임무·기구 및 국·과장급 인사를 발표했다. 이로써 38선 이남에 본격적인 미군정 통치시대가 시작됐다.

미군의 진주와 함께 미군 통신부대에 소속된 종군기자(‘사진파견대’)들이 서울에 들어왔고, 그 중의 한 명이 돈 오브라이언(Don O' Brien)이다. 그는 1945년부터 1946년 1월까지 인상적인 사진을 많이 남겼다. 그러나 전문 사진가 외에도 미군 중에는 사진기를 가지고 있던 병사들이 다수 있었다. 이번에 뉴시스가 단독 입수해 처음 공개하는 미군 병사들이 찍은 사진들은 1945년 해방 직후 조선인과 귀국하지 못한 일본인이 혼재돼 있는 서울 풍경과 10월의 서울 거리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말 돈 오브라이언(Don O' Brien, 왼쪽)이 38선 인근에서 소련군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군 소속 사진가 돈 오브라이언은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에 도착해서 다음해 1월 떠날 때까지 해방 직후의 한국 모습을 기록했다. (사진=돈 오브라이언 flickr)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5년 9월 말 돈 오브라이언(Don O' Brien, 왼쪽)이 38선 인근에서 소련군을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미군 소속 사진가 돈 오브라이언은 1945년 해방 직후 한국에 도착해서 다음해 1월 떠날 때까지 해방 직후의 한국 모습을 기록했다. (사진=돈 오브라이언 flickr) 2020.0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서울에 주둔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촬영한 사진이다. 상단 왼쪽 사진은 미군이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던 일본인 여성들과 찍은 사진이다. 촬영자는 하단 왼쪽, 가운데 사진 속 미군 병사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서울에 주둔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촬영한 사진이다. 상단 왼쪽 사진은 미군이 해방 후 귀국하지 못한 채 서울에 남아 있던 일본인 여성들과 찍은 사진이다. 촬영자는 하단 왼쪽, 가운데 사진 속 미군 병사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서울에 진주한 미군 병사들과 일본으로 떠나지 못한 일본군이 종로 화신백화점에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서울에 진주한 미군 병사들과 일본으로 떠나지 못한 일본군이 종로 화신백화점에 보이고 있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1945년 10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미군환영대회'를 위해 세운 각종 광고판 주변으로 우마차와 인력거 등이 지나고 있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5년 10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미군환영대회'를 위해 세운 각종 광고판 주변으로 우마차와 인력거 등이 지나고 있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1945년 서울에 주둔한 미군들이 시장통에서 물건 구입 후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한 조선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1945년 서울에 주둔한 미군들이 시장통에서 물건 구입 후 소달구지를 끌고 가는 한 조선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뉴시스 '광복 75주년' 연재를 위해 단독 입수하여 최초 공개하는 사진으로 미군 병사가 1945년 10월경에 찍은 사진 중의 하나다. 2020.01.26. [email protected]

 정창현 평화경제연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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