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종신악장 된 건 무경험이 플러스"

기사등록 2020/01/14 16:34:29

'2020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피아니스트 벤킴과 공연 시작

[서울=뉴시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이지윤. (사진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2020.01.1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이지윤. (사진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2020.01.1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2017년 5월23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최종 오디션장. 오디션을 끝내고 현장에서 벗어나려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28)을 이 악단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78)이 불러 세웠다.

바렌보임이 이지윤에게 물었다. "나이도 어리고 솔리스트로서 잘할 것 같은데, 왜 오케스트라에 들어오고 싶냐?"고.

당시 우물쭈물대던 이지윤은 고민하다 빙긋 웃으며 말했다. "2013년 베를린으로 유학 와서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처음 본 오페라가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였는데 슈타츠카펠레가 연주했어요. 그 때 소리를 듣고 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들었죠."

이지윤은 450년 역사의 독일 명문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연주자다. 보수적인 색채가 짙은 유럽 오케스트라에서 동양, 여성, 나이 등의 3중고를 모두 이기고 최초의 동양인이자 여성 악장이 됐다.

2017년 이 악단에 악장으로 임용됐고 이례적으로 1년이 채 되지 않은 2018년 5월 단원 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종신악장에 임명됐다. 더구나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입단을 도전한 오케스트라였다.

'2020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발탁이 된 이지윤은 14일 서울 신촌동 연세대 내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자신이 슈타츠카펠레에 발탁된 것과 관련 "신선함이 크게 어필한 것 같다"고 여겼다.

"30년이 넘게 악단에 계신 분들도 많아서 세대교체가 일어나는 타이밍에 오디션을 보게 됐어요. 오케스트라에서 인터내셔널한 면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도 제게 유리하게 작용했죠. 제가 '종신 단원'으로 임명됐을 때 단원들이 '전혀 경험이 없어 하얀 도화지에 편견 없이 그림을 그릴 것 같다'는 말도 했죠. 그런 점도 플러스가 된 것 같아요."

이지윤은 그녀가 태어난 해인 1992년에 시작해 올해로 28년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컨덕터 포 라이프'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바렌보임의 전폭적인 신임과 지지도 받고 있다. 바렌보임은 베를린 클래식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거장이다.
[서울=뉴시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이지윤. (사진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2020.01.1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이지윤. (사진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2020.01.14. [email protected]

"오디션 때 처음 뵀어요. 화면, 공연장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뵈니 옆집 할아버지 같은 느낌을 주셨죠. 처음부터 굉장히 친근하게 대해주셨어요. 저는 손녀딸 대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해주셨는데 포디엄에 서 계신 분은 다른 분이더라고요. 하하. 연세는 팔순이 돼 가는데 눈동자가 열 여섯살 소년처럼 반짝 반짝 빛났어요."

1570년 창단돼 4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는 멘델스존, 바그너, R.슈트라우스 등 전설적인 작곡가들이 음악감독으로 활동했다. 푸르트벵글러, 카라얀 등 명 지휘자들이 이끌어갔던 유럽의 유서 깊은 악단이다. 바렌보임이 이끌며 그 깊은 음색을 더하고 있다. 다른 오케스트라에 비해 오페라 연주도 많다. "바그너 경우 연주시간만 6시간이 넘는 작품이 많죠. 준비 단계부터 다른 게임인 거죠."

이지윤을 포함해 악장 3명이 연주를 분담하고 있다. 악장 한명당 1년에 35주씩 일한다. 일은 관심 분야를 우선으로 적절히 배분된다. "저 같은 경우는 현대곡에도 관심이 많아요. 위촉곡, 초연 프로젝트는 항상 껴달라고 제안을 했죠. 입단 초반에 중요한 연주는 제가 하도록 배려를 해주셨죠. 악장들이 연령대와 상황이 다 달라요. 지금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조율하는데 큰 문제는 없어요. 바쁠 때는 바쁘지만 바쁘지 않을 때는 한국에 올 수 있고요. 퇴근은 바로 칼퇴근입니다."

 이지윤은 악장으로서 역할에 고민하며 충실히 하고 있다. "항상 제가 단원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어요. 실수를 한 것은 인정하죠. 연주를 잘 하는 것은 당연하고 인간 관계도 중요하죠."

베를린에는 한국 연주자가 많이 살고 있다. 음악가들 사이에서는 제2의 고향이라는 말도 나온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클래식스타인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쉽게 볼 수 있다는 농도 나온다.

이지윤은 베를린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베를린은 '20세기 빈' 같은 도시예요. 클래식 음악 종사자 말고도 화가, 작가, 연기자 등도 많이 살고 있는 도시죠. 인종, 문화, 종교 상관 없이 정말 자유롭게 사는 것 같아요. 베를린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남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안 쓰고 오직 저로서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서울=뉴시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이지윤. (사진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2020.01.14.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이지윤. (사진 =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제공) 2020.01.14. [email protected]
이지윤은 솔리스트로서도 활약 중이다. 피에르 불레즈홀, 베를린 필하모니를 비롯한 유서 깊은 유럽의 주요 공연장에서 잇따라 협연 및 독주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2004년 금호영재콘서트를 통해 데뷔한 이지윤은 2013년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콩쿠르 1위, 2014년 윈저 페스티벌 국제콩쿠르 1위, 2016년 칼 닐센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등에서 우승하며 주목 받았다. 칼 닐센 콩쿠르 우승에 대한 부상으로 2018년 발매한 데뷔 음반 '코른골트 & 닐센 협주곡집'은 '그라모폰'과 'BBC뮤직 매거진'의 '에디터스 초이스'에 연이어 선정됐다.

 같은 해 발매한 시마노프스키, 버르토크 등의 작품을 담은 독주 앨범'미스(Mythes)'는 그라모폰으로부터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의 성장하는 명성을 다시금 확인시키고, 촉망되는 미래를 지닌 아티스트 임을 공고히 하는 또 하나의 좋은 앨범"이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여덟 번째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의 주인공으로 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젊은 예술가들의 요람'으로 통하는 금호아트홀은 2013년부터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제도를 도입했다. 피아니스트 김다솔·선우예권·박종해,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조진주· 양인모 그리고 첼리스트 문태국이 거쳤다. 무엇보다 연주자 마음대로 프로그램 구성·협연자 선택을 할 수 있다. 이지윤은 "이런 부분이 감사하다"고 했다.

이지윤은 16일 신년음악회를 겸해 피아니스트 벤킴과 함께 하는 무대를 시작으로 5월7일 첼리스트 막시밀리안 호르눙과 무대, 8월27일 피아니스트 프랑크 두프리와 듀오 무대, 12월10일 피아니스트 헨리 크레이머와 무대를 앞두고 있다.

3월말에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윤이상 협주곡 2번을 한국 초연하고 여름에 서울시향과 전국투어를 도는 등 올해 한국 일정도 빠듯하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는 "너무 튀지 않게 스며들 수 있도록 연주하고 있다"는 이지윤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개성을 줄이고 솔리스트로서 개성을 많이 드러내는 시너지 효과가 흥미롭다"며 미소지었다. "올해 한국 청중들에게 바이올리니스트 이지윤으로서서 뿐 아니라 인간 이지윤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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