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어느 형제와 무서운 이웃집 아저씨

기사등록 2020/01/10 15: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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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박대로 기자 = 수십 년간 남북·북미 관계에 관심을 기울여 온 한 전문가에게서 들은 '웃픈' 이야기다.

한 형제가 있었다. 형은 서글서글하지만 동생은 주관이 뚜렷하고 포악한 데가 있다. 때로 다투기는 하지만 형과 동생은 이제 크게 싸우지 않는다. 어렸을 적 온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치고받은 뒤로 대놓고 싸우는 건 피한다.

악바리 동생은 덩치 큰 옆집 아저씨와 앙숙이다. 이 아저씨는 어렸을 적 형제 간 싸움에 형 역성만 들었다. 싸움이 끝난 뒤에도 아저씨는 형에게만 일자리를 주선해주고 뒷배가 돼줬다. 그때부터 동생은 줄곧 아저씨를 미워했다. 아저씨도 동생을 싫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동생이 아저씨와 견원지간인 윗동네 불곰 철물점 주인과 친하게 지냈기 때문이었다. 불곰 철물점이 파산하자 한숨 돌린 아저씨는 동생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을러도 보고 달래도 보고 했지만 동생은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동생은 아저씨 집에 있는 것과 비슷한 큰 몽둥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1대만 맞아도 뼈도 못 추리는 거대한 몽둥이를 자기 집 창고에 수도 없이 보유하고 있었다. 몽둥이들을 앞세워 동네를 주름잡는 아저씨가 꼴 보기 싫었던 동생은 자기가 직접 몽둥이를 만들어 아저씨를 혼내주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동생은 불곰 철물점에서 몰래 요령을 터득해 오더니 제법 비슷하게 몽둥이를 깎기 시작했다.

형은 노심초사했다. 아저씨를 위협하며 여차하면 몽둥이로 때려주겠다는 동생을 거듭 타일렀지만 동생은 되레 눈을 부라리며 "걸리적거리면 형까지 몽둥이찜질을 해주겠다"고 위협했다.

형은 아저씨에게도 동생을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아저씨가 때로 집안에 들어와 집주인 행세를 해도 형은 꾹 참았다. 아저씨가 "못된 동생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지 못하게 막아주고 있으니 그 대신 자릿세를 더 내라"고 윽박질러도 형은 "없는 형편에 뭘 더 내놓으란 말씀이신가요"라며 읍소할 뿐이었다.

최근에는 다행히 동생과 아저씨 사이에 화해 기류가 형성됐다. 형이 잠시 동생 방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하고 형 주선으로 아저씨가 동생 방에 들르는 일도 있었다. 섬마을 중식당에서의 만남은 화해 분위기의 절정이었다. 아저씨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몽둥이를 내놓으면 앞으로 핍박하지 않겠다"고 제안했고 동생 역시 오랜만에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평화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이어진 쌀국수집 회동에서 아저씨가 별안간 "너, 숨겨둔 몽둥이가 있지? 그걸 다 내놓기 전에는 화해 안 해"라며 태도를 바꿨다. 뒤통수를 맞은 동생은 분노에 휩싸인 채 문을 박차고 나갔다.

배신감을 느낀 동생은 아저씨는 물론 형에게까지 심통을 부렸다. 화해 무드 당시 앞으로 손찌검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동생은 형 면전에서 작은 몽둥이들을 붕붕 휘두르고 다녔다. 특히 지난 성탄절에는 동생이 몽둥이 손잡이 부분을 정성스레 손질하며 "마음에 안 들면 아저씨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겠다"고 으르는 통에 형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했다.

형의 고민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아저씨는 정말 무서운 양반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동생처럼 아저씨 말을 안 듣고 버티던 건넛마을 씨앗학교 재학생 하나가 아저씨한테 한 방 얻어맞았다. 서슬 퍼런 아저씨가 혹여 동생에게도 주먹을 휘두를까봐 형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형은 오늘도 차를 몰고 부지런히 동네를 누빈다. 집에서는 성난 동생을 다독이고 동네에서는 차를 몰고 다니며 아저씨를 비롯한 실력자들에게 동생 좀 잘 봐달라고 읍소한다. 한때 줄곧 6인승만 탔던 형은 이제 3인승이든 2인승이든 가리지 않고 몬다. 우리 집에, 우리 동네에 평화가 깃들 날을 꿈꾸며.

이야기의 끝은 해피엔딩이 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가 필요하다. 이야기를 행복한 결말로 이끌어갈 초자연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게 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무엇이 적당할까 생각하다 한 고위 공직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하나의 기사 때문에 동서독이 통일됐듯이 우리 기자들도 남북·북미 간 긴장을 완화시키고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기사를 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공직자가 언급한 것은 동서독 통일에 결정적 기여를 했던 한 기사다. 1989년 이탈리아 뉴스통신사 안사의 리카르도 에르만 특파원은 기자회견에서 동독 정부 대변인의 답변을 잘못 해석해 베를린 장벽이 철거된다는 기사를 내보냈고 이는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결국 같은 해 장벽이 무너진다.

잇따른 남북·북미 정상회담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던 기대감이 어느새 깡그리 사라져버린 현 시점에서 암울한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기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daero@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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