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완전개방' 시대, 한국은 준비됐나

기사등록 2019/10/22 05: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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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로 美 제시한 개도국 지위 포기결정 시한 마감
"美, 시한 넘긴다 해서 즉각적 조치 취하진 않을 것"
농산물값 하락 대책 쇄도…"아직 발표할 단계 아냐"
文정부, 농업 외면 지적…"경쟁력 없인 미래도 없어"

associate_pic4【무안=뉴시스】변재훈 기자 = 전남 지역 6개 농민단체들이 21일 오전 무안군 삼향읍 전남도청 앞에서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검토 움직임에 반발하며 농산물 값 안정대책 수립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19.10.21. (사진=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 제공)photo@newsis.com
【세종=뉴시스】장서우 기자 = 한국이 세계무역기구(WTO) 상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를 유지할지를 두고 미국이 제시한 답변 시한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통상 당국은 이미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 분위기다. 문제는 농업인들의 반발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농정 당국은 뾰족한 수 없이 농산물 '완전 개방'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2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오는 23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시한 답변 시한이 마감된다. 우리 정부가 시한 내 결정을 마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예산안 심사, 국정 감사 등 경제 부처와 얽힌 국회 일정을 고려할 때 최종 결정 기구인 대외경제장관회의가 기한 내 열릴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부처 안팎에서는 경제 컨트롤 타워인 기획재정부가 국회 종합 감사를 마친 후인 오는 25일에 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한을 지키지 못할 경우 자국법에 따라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바 있지만, 이를 넘기더라도 미국 정부가 즉각적인 대응에 나서진 않으리란 것이 농식품부의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한을 지키지 않은) 국가들의 리스트를 공개하는 안을 포함해 내부적으로 대응 방안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구체적인 조치가 가시화된 것은 없다"고 전했다.

정부는 일찌감치 '실익이 크지 않다'는 논리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미국이 제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주요 20개국(G20) 회원국 ▲세계은행(WB) 기준 고소득 국가 ▲세계 상품교역(수출입)에서 0.5% 이상 비중 차지 등 4개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어 명분도 부족하다는 논리다.

관련 사안을 논의했던 지난달 20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지난 21일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화하기도 했다.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 박영태 기자 = WTO 개도국지위 유지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 회원들이 18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WTO 개도국 지위 유지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10.18.since1999@newsis.com
농업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는 당혹스러운 눈치다. 농협,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 단체들이 '개도국 포기는 곧 농업 포기'라며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농산물 관세나 보조금 등 측면에서 당장의 영향은 없겠지만, 앞으로의 불확실성이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예단할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농업을 보호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 문제다.

추후 협상을 거쳐 수입 농산물이 밀려들어오는 완전 개방 시대가 왔을 때 농산물 가격이 폭락하는 것을 어떻게 막아야 할지가 급선무다. 농산물 가격은 최근 0% 이하의 '초저물가'를 이끌고 있는 주요 요인이기도 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농업계와는 계속해서 소통하면서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지만, 아직 발표할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이는 매해 연례행사처럼 나오는 '농업 홀대론' 지적과 상통한다. WTO로부터 특혜를 받기 시작한 이후에도 농업인들의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분석에서다. 농업소득은 1995년 WTO가 출범하던 당시 1047만원에서 지난해 1292만원으로 오르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곡물 자급률은 29.1%에서 21.7%로 되레 떨어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라는 오명까지 썼다.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세인트 레지스호텔에서 해외투자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경제 설명회에서 참석자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2019.10.17. (사진=기획재정부 제공) photo@newsis.com
정부는 이번 정권의 농정 공약인 '공익형 직불제'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만에 하나 협상이 재개돼 보조금 감축 논의가 나오더라도 직불제 개편을 통해 농가 소득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이 역시 정부가 농업인들에게 직접 현금을 쥐어 준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우리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해법은 되지 못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과거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농업 부문에 한해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만들었던 김완배 서울대 명예교수는 "직불제 전환으로 현재를 사는 농민들은 죽을 때까지 먹고 살 수는 있겠지만, 미래 세대는 힘들어질 것"이라며 "우리 농업이 스스로 경쟁력을 갖지 못하면 미래는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농가의 상황은 예전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나아진 것이 없다"며 "개도국 지위 포기를 논하기 전에 우리 농업의 이런 상황을 충분히 설명하고 개도국 지위를 유지해야 할 당위성을 설득하는 작업이 우선됐어야 했는데 지금 정부는 농업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농식품부는 이번 주 내내 내부 회의를 거듭할 전망이다. 이날(22일) 김용범 기재부 1차관도 민·관 합동 간담회를 열어 농업계와의 대화에 나섰다. 설득 작업이 원활히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전날 전남 지역 6개 농민 단체들은 "농산물값 안정 대책부터 내놓으라"며 개도국 지위 포기를 선언하지 말 것을 촉구한 바 있다.


suwu@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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