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고약" 볼턴 향한 北 적개심…북미 협상 또다른 변수

기사등록 2019/03/26 14:58:54

최선희 "볼턴, 말 가리지 못하고 마구 내뱉어"

"그 후과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 참으로 우려"

"폼페이오와 볼턴이 협상 노력에 장애 조성"

양측 앙금 향후 협상 어떤 영향 미칠지 주목

북미 지난해 원색 비난 주고받으며 갈등 고조

美 "리비아처럼 끝날 것" 北 "아둔한 얼뜨기"

싱가포르 이후 트럼프-김정은 간 신뢰 여전

최선희도 대미 발언 표현 수위 조절하는 듯

백악관 "트럼프, 金 좋아해…협상 계속 원해"

【서울=뉴시스】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5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사진은 폭스비즈니스 인터뷰 캡쳐. 2019.03.06.
【서울=뉴시스】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이 5일(현지시간) 폭스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사진은 폭스비즈니스 인터뷰 캡쳐. 2019.03.06.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북미 비핵화 협상에서 악역을 맡고 있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향한 북한의 반감이 갈수록 커지는 기류다. 북미 비핵화 협상은 볼턴 보좌관이 전면에 나설 때마다 출렁거렸다. 양측의 앙금이 향후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 15일 평양에서 주북 외교단과 일부 외신을 불러 2차 북미 정상회담 내막과 결과를 설명했다. 그는 사전에 작성한 '발언문'을 통해 유독 볼턴 보좌관을 거명하며 분노와 적의를 드러냈다. 

뉴시스가 입수한 최 부상의 회견 발언문을 보면 그는 "제2차 (북미) 수뇌회담 이후 미국 고위관리들 속에서는 아주 고약한 발언들이 연발되고 있다"며 볼턴 보좌관을 특정했다.

최 부상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은 대화 상대방인 우리에 대해 말을 가려하지 못하고 자기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지도 모르고 마구 내뱉고 있다"며 "그런 식으로 우리 최고지도부와 우리 인민의 감정을 상하게 할 때 그 후과가 어떠할 것인지, 과연 감당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우려스럽다"고 겨냥했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호텔에서 진행된 2차 정상회담 확대회담에서 볼턴 보좌관과 북한 측이 얼마나 날을 세웠는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오후에 만나 환담과 만찬을 진행하고, 둘째 날 오전 단독회담을 진행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하노이 선언' 채택이 유력시됐었다.

그러나 볼턴 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이 참석한 확대회담장에 들어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끝내 오찬장에 함께 들어서지 못했다. 최 부상의 발언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 초안에 스냅백(snapback)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협상 타결을 시도했다.

최 부상의 발언문을 보면 "회담에서 우리가 현실적인 제안을 제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제재를 해제했다가도 조선(북한)이 핵활동을 재개하는 경우 제재는 가역적'이라는 내용을 포함시킨다면 합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신축성 있는 입장을 취했다"고 적혀 있다.

이어 "하지만 미 국무장관 폼페오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볼턴은 기존의 적대감과 불신의 감정으로 두 수뇌분들 사이의 건설적인 협상 노력에 장애를 조성하였으며 결국 이번 수뇌회담에서는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오지 못하였다"고 전했다.

스냅백은 합의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경우 관련 제재를 협상 이전으로 돌리는 조치를 말한다. 즉 '가역적 제재 완화' 카드로 결과물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노란 봉투'를 들고 확대회담에 참석했던 볼턴 보좌관 등이 막은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행정부 참모진과 북한의 불편한 관계는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5월 볼턴 보좌관은 대북 저격수로 나서며 북한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는 '선 비핵화 후 보상' 방식의 리비아식 비핵화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북한을 압박했다. 여기에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이 리비아처럼 끝날 거라며 대북 압박에 가세했다.

이에 북한은 당시 최 부상 명의의 담화문을 통해 "핵보유국인 우리 국가를 고작 얼마 되지 않는 설비나 차려놓고 만지작거리던 리비아와 비교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정치적으로 아둔한 얼뜨기인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비난하며 "미국이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끔찍한 비극을 맛보게 할 수 있다"고 맞받았다.

이에 앞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도 담화를 내 "일방적 핵포기를 강요하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평양=AP/뉴시스】15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과 북측 관계자들이 평양에서 각국 외교관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 부상은 이날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03.15
【평양=AP/뉴시스】15일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가운데)과 북측 관계자들이 평양에서 각국 외교관과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최 부상은 이날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중단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9.03.15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최근의 엄청난 분노와 노골적인 적대행위가 담긴 북한의 성명서를 보면서 지금 이 순간 그것(북미 정상회담)이 부적절하다고 느낀다"며 북미 정상회담 취소를 통보했다.

북한은 곧바로 물러섰다. 김 제1부상은 담화에서 "우리는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 마주 앉아 문제를 풀어나갈 용의가 있음을 미국 측에 다시금 밝힌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이 내달 12일 열릴 수도 있다"고 화답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볼턴 보좌관은 등장하지 않았다. 북한의 입장을 반영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달 2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볼턴 보좌관은 공식 수행원 명단에 호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하노이에 왔고, 확대회담에 참석하며 '결렬'에 영향을 미쳤다. 향후 비핵화 협상 국면에서 볼턴 보좌관이 계속 등장할 경우 북미 간 갈등이 또 고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지난해와 같은 수준의 영향력은 없을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 1년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의 개인적 신뢰가 쌓였기에 급진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다. 최 부상이 볼턴 보좌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면서도 지난해처럼 '아둔한 얼뜨기', '끔찍한 비극' 등의 극단적 표현을 자제하는 것 또한 최고지도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최 부상의 지난 15일 회견 발언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냅백 조항 삽입을 제안했다는 내용의 협상 내막이 적혀있지만, 당시 외신 보도에는 관련 내용이 없었다. 회견 과정에서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결렬된 협상의 내막을 공개할지에 대한 고민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미국과의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 반영된 결정으로 풀이된다.

미국 또한 대북 유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대통령은 그(김정은)를 좋아한다. 그들은 협상을 계속하기를 원하고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자"며 협상 동력을 살려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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