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혐오한다⑦]"여성이자 성소수자…내 존재를 부정하던 시기를 넘어"

기사등록 2018/09/13 07:50:00

최종수정 2018/09/13 16:41:29

"초등학교 때 깨달은 정체성…선생님은 '이민 가야한다'고"

"남자 아이돌 '팬픽'의 환상과 또 동떨어진 동성애의 현실"

"게이는 좋은데 레즈는 더럽다" 학교선 동성애 비하·조롱

여성 권리 관심 늘었지만…"여성 성소수자는 또 배제돼"

"이성연애 관계의 불평등, 시댁 관계 문제 등 주로 제기"

"여성 성소수자들은 거기서조차도 '비가시화' 돼 있다"

"음지에서 나와 이슈가 되는 지금 그래도 긍정적 변화"

"인식들이 열리고 있고 장기적으론 좋게 간다고 본다"

"청소년 성소수자들, 혐오 만연 속 절망에 빠지곤 해"

"그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성소수자 인권 활동 등을 펼친 한예리(가명)씨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교육공동체 벗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9.07.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성소수자 인권 활동 등을 펼친 한예리(가명)씨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교육공동체 벗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9.0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김지은 기자 = "혐오라고 하면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친구들이 '너 혹시 여자랑 연애하냐'고 해서, 잠깐 멍해졌거든요. 그러다가 '아닌데? 내가 그런 애처럼 보여?'라고 대답했어요. 기분 나쁘다는 표정까지 담아서."

 한국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혐오에 노출돼 있으면서도 오랜 시간 인내하고 침묵하던 이들이 요즘 개별적으로,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간 익숙하게 부정당해왔던 정체성 문제를 토로하고 자기 삶을 재정립하고 싶다는 내면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여성이면서 성소수자로 살아온 한예리(가명·23)씨도 혐오 대상자로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다. 한씨는 어린 나이에 성 정체성을 깨닫고 사회적 장벽에 부딪힌 이후 중학교를 자퇴하고 성소수자 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혐오의 시선들 속에서 생활 반경이 얼마나 좁아질 수 있는지를 한씨는 지금까지 피부로 체감해 왔다.

 서울 마포구의 교육공동체 사무실에서 만난 한씨는 그간 소수자로서 느껴온 바에 대해 담담하게 풀어놨다. 그는 혐오 논쟁으로 '시끄러운' 최근의 상황이 오히려 아무도 입 밖으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던 옛날보다는 낫다고 답했다.

 -본인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처음 고민하게 된 건 초등학교 6학년때였다. 같은 반 친구를 좋아하는 감정이 있었는데, 그땐 아무도 동성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걸 가르쳐주지 않아 우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위 친구들이 관심이 과도하다며 이상하다고 말하더라. 우리끼리도 서로 계속 친해지다가 뽀뽀를 하게 됐고 그 이야기를 일기장에 적었는데 어머니가 보시고 그 친구 어머니도 알게 돼 담임 선생님과 상담까지 했다. 친구는 자기 어머니에게 폭행 당했고 우린 다시 친하게 지낼 수가 없었다. 그때 선생님이 '너희 계속 이런 식이면 이민 가야 한다. 한국에서 살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게 아직도 생각난다. 이후 어머니랑 갈등하다가 가출을 하기도 했다."

 -가장 상처가 된 부분은 무엇이었나?

 "아무래도 청소년기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나. 부모님의 말이나 지원 같은 게 절대적일 수밖에 없는 시기이고. 당시 만났던 친구는 폭행당해도 저항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는 권력관계 속에서, 부모에게 거부당한다는 게 심리적으로 상처가 됐다. 나도 그렇고 그 친구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집에서 더 이상 살수 없게 되거나, 계속 폭행당하는 위험한 상황이 된 게 안타깝다. 학교에서의 괴롭힘이나 이런 일이 성소수자에게 많지만 가정에서 특히 청소년들이 거부당할 경우 상처가 크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성소수자 인권 활동 등을 펼친 한예리(가명)씨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교육공동체 벗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9.07.  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성소수자 인권 활동 등을 펼친 한예리(가명)씨가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교육공동체 벗 사무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09.07.  [email protected]
-혐오의 대상이 된 게 중학교 자퇴의 이유였나.

 "꼭 특정 사건이 계기가 된 건 아니지만 이유의 일부였던 건 맞다. 보통 학생들이 학교가 싫더라도 마지막으로 붙잡아주는 게 친구관계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 그 경험이 있고 나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꼭 왕따를 당했다기보단 내가 친구를 만나도 나에 관해 말할 수 없는 게 있다는 저항감이 컸다. 또 당시 친구들이 남자 아이돌 그룹의 '팬픽'을 많이 봤는데, 그 때문에 동성애는 뭔가 환상에 존재하는 영역으로 취급받는다는 생각을 했다. 잘생긴 연예인들 사이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실제 우리 학교에, 내 친구 중에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전혀 없더라. 예를 들면 게이는 좋은데 레즈는 더럽다라고 말을 하기도 하고, 선생님들도 동성애를 비하하면서 웃음거리로 만들고. 외국 게이바 갔는데 그게 얼마나 역겨웠는지 얘기하면 친구들은 다 웃는 등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말을 일상적으로 하는 문화가 견디기 어려웠다."

 -여성이라는 것 그리고 성소수자라는 것, 혐오가 겹쳐서 받는 고통이 있었나.

 "물론이다. 레즈비언들은 게이 커플이 제일 돈이 많고 레즈 커플이 제일 가난하다고 얘기한다. 성별 임금격차 때문이다. 확률적으로 게이 커플이 200을 벌면 레즈는 120밖에 안되는 거니까. 실제로 한국에서도 성소수자를 위한 바나 공간이 남자 성소수자를 위한 게 100이라면 여자들을 위한 건 5 정도밖에 없다. 아무래도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숨어서 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 지금 여성의 권리 얘기가 나오는 와중에도 여성 성소수자의 이야기는 배제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주로 제기하는 문제가 이성연애 관계의 불평등이나 시댁 관계 등 생활 속 민주주의 아닌가. 여성 성소수자들은 거기서조차도 비가시화 돼 있다."

 -최근 우리 사회 혐오에 관한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어쨌든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때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 네이버에 동성애를 검색해보고 나름 정보를 찾아봤으나 나오는 게 없었다. 10년만에 이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정보가 늘어났다. 단체도 많이 생기고 가시화됐으며 소셜미디어에서도 정보의 양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아예 생각조차 안했고 음지에 있었기에 커밍아웃도 훨씬 힘들었다. 지금은 어쨌든 젊은 세대들이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고, 모욕을 하든 뭐든 많이 접하면서 산다. 그렇다보니 확실히 인식이 열리게 됐고 장기적으로는 좋게 가고 있다고 본다."
-혐오 속에서 힘들어하는 성소수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청소년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활동을 하며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게 많다. 청소년 성소수자들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기에 학교와 집이 생활 반경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만연한 가운데 '세상은 다 이렇구나' 하는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세상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청소년 시기에도 좀 더 다른 관계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갈 수 있는 거고, 아니면 학교를 졸업하거나 집에서 독립하고도 또 자신에게 맞는 열린 공동체를 만날수도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살이나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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