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여왕' 뮬로바가 웃는 이유 "인생에 대한 열린 마음"

기사등록 2018/05/23 19:28:06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얼음여왕'으로 통하는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빅토리아 뮬로바(59)가 앙상블 '제네바 카메라타'(GECA)와 6월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한다. 뮬로바는 7번째 내한이며,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그렐자메르(41)가 이끄는 제네바 카메라타는 첫 내한이다.
 
뮬로바의 명성은 1980년대 러시아 학파의 천의무봉 테크닉과 우아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피어났다. 미스 터치를 극도로 두려워한 그는 죽도록 연습에 매달렸다. 미인이지만 웃음기 없는 얼굴로, 연주에만 몰두해 '얼음여왕'으로 불렸다. 그러나 '무대에서 연주자가 행복해야 관객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 삶의 의미를 더 톺아보고 있다.

최근 "자주 웃는다"는 목격담이 많이 나오는 뮬로바는 크레디아를 통한 e-메일 인터뷰에서 '얼음여왕'이라는 별명에 관해 "숫기 없는 모습을 오해한 것으로 제게는 아픈 별명이죠"라고 했다.

그녀를 웃게 하는 것 중 하나는 더블 베이스 연주자 미샤 뮬로브-아바도(Misha Mullov-Abbado)다. 26세 연상이던 거장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와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 "엄마가 되고 나서 제 세계가 많이 바뀌었어요"라고 즐거워했다.

과거에 미스터치를 용납하지 않았던 연주도 최근 한결 편안해진 듯하다. 그러나 '표범이 무늬를 잃지 않듯 뮬로바의 그 자연스러운 사운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영국 텔레그래프 표현대로 연주 스타일은 바뀌어도 우아한 사운드는 여전하다.

"(러시아에서) 제 삶은 학교와 체제에 억눌려 있었어요. 연습과 연습의 연속이었고, 평생 친구나 다른 것이 없어 힘들었죠. 지금은 연습도 많이 하지 않아요. 테크닉은 빠르게 정확한 음정으로 연주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어떤 때는 아주 느린 작품들이 더 어렵고 까다로울 수도 있죠."

단련을 쉬지 않았던 그녀는 새로운 곡을 연주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요즘은 연습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젊었을 때 굉장히 많이 연습했고, 좋은 테크닉을 길러 왔어요. 이를 위해서는 굉장히 엄격하고, 섬세하며 많은 시간 연습해야 했어요. 가끔 저는 공연이나 심지어 연습도 안 하고 몇 달을 쉬기도 해요. 첫 번째 휴식으로는 2004년에 8개월 동안 쉬면서 즐긴 적이 있죠.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인도와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바이올린을 한 번도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러고 나서도 연주를 다시 시작하는 것은 깜짝 놀랄 정도로 쉬웠어요."  

영화 같은 뮬로바의 삶은 여전히 회자하고 있다. 구소련에서 시벨리우스 콩쿠르와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큰 주목을 받은 그녀는 1983년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한다. 당시 그녀의 망명 기사는 세계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로 유명한 사건이었다.

구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분신과도 같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도 호텔 방에 놓아둔 채 미국 대사관의 도움으로 워싱턴에 입성했다. 첩보 영화를 능가할 정도로 긴박하게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드라마틱한 삶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제 커리어에서 중요한 순간들은 아주 많죠. 가장 먼저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과 제가 러시아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을 만난 것이죠. 그리고 1982년에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것도요. 그 밖에 중요한 순간들은 지금의 저를 뮤지션으로서 있게 한 아바도, 조반니 앤서니니, 오타비오 단토네, 파보 예르비와 다른 많은 뮤지션을 만난 순간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본인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현재 남편인 영국 첼리스트 매슈 발리(53)와 만나고 함께 작업한 것을 꼽았다. "매튜는 제게 음악의 다양한 형태를 소개해 줬어요. 그와 함께 저는 클래식이 아닌 음악 레퍼토리들을 탐험하며 음악가로서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죠."

수많은 후배 여성 바이올리니스트가 롤모델로 꼽는 연주자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가져라'고 조언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좋은 바이올리니스트는 많지만, '위대한' 연주자는 많지 않죠. 기본 기술을 잘 다지는 것이 중요해요. 처음에 기본 트레이닝에 집중하고, 그다음에는 귀를 열어 모든 것을 들었으면 좋겠어요. 음악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요."
 
제네바 카메라타와 공연에서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2012년 뮬로바의 '베토벤 & 멘델스존' 음반에서 그라모폰이 ‘가장 로맨틱한 멘델스존’이라 평한 연주를 들을 기회다.

"이번 콘서트 프로그램은 그랠 자메르의 독창적인 구성이 돋보이죠. 멘델스존은 그 프로그램 중 하나에요. 음악에서 테크닉이 유일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때로는 느린 악장의 표현도 중요하죠. 이 곡처럼요. 아주 아름답고 우아한 곡입니다."
 
뮬로바는 수차례 내한했으나 빠듯한 스케줄로 공연 외에 한국의 다른 면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다. 여유가 생긴 그녀는 공연지도 좀 더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 듯하다. "시간이 좀 더 나서 둘러볼 틈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시골 쪽이나 자연을 보는 것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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