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위급회담 무기 연기 이유…'韓美에 끌려가지 않겠다'

기사등록 2018/05/16 13:25:33

北 한미훈련에 일관되게 비난…대내·대외 측면

정부 '일관성' 강조 차분하게 대화 호응 촉구

대미 비난 '회담 주도권 확보 의도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김지훈 기자 =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담판을 앞두고 대남(對南)·대미(對美) 힘겨루기를 벌이기 시작했다. 대남 관계에서는 비난 수위를 조절하는 모습도 감지되지만, 대미 관계에서는 미국의 진정성을 의심하며 강하게 맞붙기 시작했다.

 북한은 4·27 판문점선언 후속 이행을 위한 고위급회담 개최 예정일인 16일 새벽에 판문점 채널로 통지문을 보내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리고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의 '보도'로 대규모 공중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는 한·미 당국을 비난했다.

 중앙통신은 "남조선 전역에서 우리를 겨냥해 벌어지는 이번 훈련은 판문점선언에 대한 노골적 도전이며, 조선정세흐름에 역행하는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이라며 "미국도 남조선 당국과 함께 벌이는 군사적 소동국면을 놓고 일정에 오른 조미수뇌상봉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앙통신은 더불어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공사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워 우리의 최고존엄과 체제를 헐뜯고 판문점선언을 비방중상하는 놀음도 감행하게 방치했다"며 힐난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 14일 국회에서 출판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핵실험장 폐기 외신 초청은 쇼맨십', '김정은은 즉흥적이고 거친 성격'이라는 평가를 내놓은 바 있다.

 북한은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이라고 판단되면 어느 상황에서건 날 선 반응을 내놓았다. 2016년 7월 당시 미국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인권 제재 대상자로 지정하자 외무성 성명을 통해 "선전포고"라고 규정하며 북미 유엔 주재 대표부 간 접촉 통로였던 뉴욕채널을 전면 차단하겠다고 통지하기도 했다.

 북한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러운 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 통보가 최근 남북 화해 국면에서 부각될 수밖에 없긴 하지만 전례에 비춰볼 때 당연한 수순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오히려 발표 주체와 수위 등에 비춰볼 때 과거보다 저강도로 대응하고 있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발표가 성명이나 담화도 아니고 조선중앙통신 보도라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비난 수위를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고 본다"며 "북한이 판을 깨려는 의도는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또한 "북한은 과거부터 한미 훈련에 반응해왔다"며 "내부적으로 권위를 유지하기 위한 측면, 또 향후 협상에서 연합훈련 문제를 유용한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명분 축적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태 전 공사의 국회 기자간담회를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그는 북한은 최고존엄과 체제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넘기기 어렵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병진노선까지 접고 매진하는 자신들이 남한과 미국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리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도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정부 또한 북한의 이번 고위급회담 연기 통보에 차분하게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출근길에 "중요한 건 이런 상황에서도 멈추거나 굽히지 않고 일관되게 계속해나가는 것"이라며 "그런 입장에서는 북도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또한 대변인 성명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북측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라도 남북 간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북한은 비핵화 담판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에는 좀 더 강경한 모습이다. 이날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담화를 통해 '선 핵포기 후 보상',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생화학무기 완전폐기' 등의 발언을 내고 있는 미국을 규탄했다.

 김 제1부상은 담화에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다. 미국의 이러한 처사에 격분을 금할 수 없으며 미국이 진정으로 건전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미관계 개선을 바라는가에 대하여 의심하게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공갈을 끝장내는 것이 (비핵화) 선결조선으로 된다는 데 대해 수차례 천명했다"며 "미국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는 한 번도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일방적인 핵포기만 강요하려 든다면 다가오는 조미수뇌회담에 응하겠는가를 재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의 허들을 높이는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협상의 주도권을 쥐고 가겠다는 차원에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도대로 끌려가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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