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확산에 성범죄 처벌 대책 봇물…문제는 '혐의 입증'

기사등록 2018/03/18 12:50:00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2018.03.08. bjko@newsis.com
【서울=뉴시스】고범준 기자 =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이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직장 및 문화예술계 성희롱-성폭력 근절 대책 발표를 하고 있다. 2018.03.08. [email protected]
정부·지자체 성폭력 대책은 대부분 처벌에 초점
피해자 고소·고발 전제…현실적으론 걸림돌 많아
가해자들 "성관계 인정해도 강제성은 부인" 전략
경찰, 친고죄 폐지 이전 사건에 '상습' 혐의 적용
권력형 성폭력은 물리적 강압 없어도 처벌 가능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자체가 증거"
"증거 확보 책임, 피해자에 있지 않아…즉각 신고"

 【서울=뉴시스】채윤태 기자 =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며 성범죄 진상조사와 강력한 처벌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그러나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은 성폭력의 특성상 고소를 주저하는 피해자들도 많다.

 최근 정부는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을 퇴출시킨다는 강경책을 내놨다. 여성가족부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공공 부문 성희롱·성폭력 근절 및 보완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성폭력 범죄로 300만원 이상 벌금형을 선고받아 형이 확정되면 당연퇴직을 적용하도록 국가공무원법 개정을 추진키로 했다.

 각 지자체와 공기업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대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국회에서도 올해 들어서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14건,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7건 등이 발의됐다.

 다만 대부분의 대책은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수사기관이 혐의를 입증하고 법원이 판단을 해야 작동될 수 있는 대책이다. 따라서 이 같은 대책은 고소·고발이 전제가 돼야 한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출범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미투, 위드유'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3.15.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미투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 출범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미투, 위드유'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email protected]
아직까지 성폭력 범죄 고소·고발을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지난 2013년 6월18일 친고죄가 폐지되며 피해 당사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아도 수사와 처벌이 가능하게 됐다는 점은 고무적이지만 공소시효(10년) 이전의 범죄나 친고죄 폐지 이전 범죄는 처벌하기 어렵다.

 이 같은 우려가 제기되자 경찰은 지난 5일 "2010년 4월14일 형법상 '상습법' 개념이 도입돼 피해자 신고가 많아지면 '상습성'을 전제로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 2010년 4월14일~2013년 6월18일 사이에 발생한 범행에는 상습 강간, 상습 강제추행, 상습 업무상 위력 간음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해석했으나 같은 기간의 단순 강간, 강제추행 혐의는 여전히 적용되지 않는다.

 게다가 성범죄를 법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기에 고소를 주저하는 피해자들도 많다. 성범죄는 대부분 폐쇄된 공간에서 목격자가 없는 곳에서 이뤄지고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렵기 때문에 입증이 쉽지 않다. 피의자들이 성관계는 인정하지만 강제성을 부인하는 것도 이런 특성에 기인한다.

 극단원들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된 연극연출가 이윤택(66)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은 성관계를 맺은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폭력적이거나 물리적인 제압은 없었다"며 강제성을 부인했다. 성폭행 의혹으로 잇따라 고소를 당한 안희정(53) 전 충남도지사 측도 "남녀간 애정행위였고 강압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3.08 taehoonlim@newsis.com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세계여성의 날인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전국여성노동자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8.03.08 [email protected]
한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가 지났어도 경찰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범죄를 발견할 수 있고 상습성을 입증할 만한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다"며 "증거를 확보할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대신 피해를 당했을 때 바로 신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미투 운동으로 드러나는 성범죄 양상은 '권력형 성폭력'이 많다"며 "물리적 강압이 없었거나 입증되지 못하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사회적 관계를 통해 위계 및 위력이 있었음을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력형 성범죄'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이은의 변호사는 "가장 좋은 건 현장에서 바로 신고하는 것이다. 친고죄가 폐지돼서 인지수사가 가능하고 공소시효에서도 보다 자유로워졌다"며 "피해자가 수사에 협조를 안 하면 대개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성범죄 성격상 수사가 어렵다. 용기를 내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 변호사는 "피해자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진술 자체가 첫 단초이자 증거 사실이다. 각자 엇갈리는 진술 속에 대질이나 거짓말탐지기 같은 여러 방법들이 동원되고 가해자의 진술이 모순되고 엇갈리면 그 또한 증거가 된다"며 "무고 등의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려면 증거 여부보다는 발생 사실의 법적 성격을 점검하는 것이 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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