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은 소프트 파워로 얼마든지 무너뜨릴 수 있다” 태영호 전 북한공사

기사등록 2017/11/20 11:03:32

최종수정 2017/11/27 09:26:09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태영호 전 북한공사가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1.20.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태영호 전 북한공사가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1.20. [email protected]

 미국 다녀온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 단독인터뷰
“북한은 왜 영화 한 편 못 만들게 되었나”

<김현호의 넛지 인터뷰>

【서울=뉴시스】김현호 기자 =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최근(10월 30일~11월 6일) 미국을 다녀왔다. 미국 정부와 의회 지도자들과의 만남, 주요 싱크탱크와의 토론, 언론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그는 북한 핵위기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토로했고 그 내용은 국내에도 전해졌다. “북한은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대상”이라는 그의 발언은 트럼프 미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뉘앙스를 풍겨 미묘한 파장을 낳기도 했다. 
 작년 여름 망명한 그는 우리의 눈과 귀가 닿기 어려운 북한의 심층부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소중한 정보의 보고다. 그는 망명 이후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은둔의 길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적극적인 공개 발언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내면에는 아직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듯했다. 슬쩍 지나치는 질문에도 그는 가슴속 오랜 응어리를 풀어내듯 깊은 이야기를 길게 토해냈다. 간추리고 압축했지만 인터뷰 기사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는 주로 어떤 질문을 받았나.

“선제타격이나 예방공격과는 다른, 극히 제한적인 타격(very limited strike)을 가했을 때 북한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두 번, 일본의 진주만 공습(1941년)과 알 카에다의 9.11 테러(2001년)때 설마하며 상대를 무시하다 엄청난 재앙을 당한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북한에 미국의 힘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으면 또다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게 미국 정부와 싱크탱크의 일반적 분위기였다.
‘극히 제한적 타격’은 북한의 일정지역에 미 군사력의 가공할 위력을 보여주어 북한의 도발 의지를 꺾는다는 개념이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시설을 무력화시키는 이른바 ‘외과적 공격’과는 달리, 인명피해 등을 거의 초래하지 않으면서 김정은에게 강한 경고를 보내기 위한 군사행동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에 북한이 군사적으로 반발하겠느냐는 것이다.”

-뭐라고 답했나.

“예고 없는 공격은, 그것이 어떤 규모이든 북한의 즉각적인 반격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군사 지휘체계가 그렇게 돼 있다. 적의 공격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휴전선의 지휘관들은 무조건 대남 포격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한국도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고 결국 전면전 아닌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때 한국이 보복 포격을 했지만 확전되지 않았는데.

“그때는 북한이 예견했던 충돌이었다. 북한이 한국측에 북한쪽으로 포사격훈련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한국은 원래 계획대로 훈련을 했다. 북한으로서는 미리 계획하고 있던 충돌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제한 타격은 불시에 예고 없이 가해지는 것이고 그러면 북한은 즉각 반응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미국이 언제 어디를 때린다고 미리 알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미국에서 내가 그런 말을 하자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6.25전쟁이후 트럼프 같은 미국대통령이 처음 나왔는데 이 기회에 북한을 때려야 하지 않느냐고 내 말에 서운해했다고 한다. 미국에서도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뭐든 해봐야지 그냥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북한은 파괴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의 대상이라고 했는데.

“미국사람들이 트럼프의 ‘북한 파괴’에 대해 묻길래 한 답이다. 미국대통령이 개인적으로 트위터 등을 통해 거친 말을 하는 것과 유엔 총회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미국에 가보니 군사 옵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많이 거론되고 있어서 비군사적 옵션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도 했다. 내가 미국 언론에 나와 북한을 파괴의 대상이라고 하면서 공격해야 한다고 하면 북한에 있는 친지들과 동료들이 뭐라고 하겠나. ‘남쪽에 가더니 우리를 모두 죽이라고 하나’라고 기막혀 하지 않겠나. 나는 그들을 죽이기 위해 한국으로 온 것이 아니다. 비군사적 옵션으로 북한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는 미국에 가기 전부터 내가 강조해온 것이다.”

-북한의 변화가 가능한가.

“100% 가능하다. 소프트파워를 넣어서 북한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김정은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미 한국 드라마와 노래가 북한 전역을 휩쓸고 있다. 북한 당국이 사력을 다해 막으려고 하지만 불가능하다.
내가 미국에 있던 지난 3일 북한 노동신문에 ‘제국주의의 사상 문화 침투 책동을 저지 파탄시키자’는 장편의 기사가 실렸다. 제국주의 사상과 문화로부터 북한의 청년과 학생들을 지켜내지 못하면 큰 우환거리가 되고 체제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과거 동유럽이 미국의 군사적 공격으로 망한 것이 아니라 사상 문화적 침투로 망했다고도 했다. 북한은 지금까지 미국의 군사적 공격에 의해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문화 사상 공세에는 체제가 망할 수 있다는 가설을 스스로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 기사를 보여주었더니 미국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더라.
북한에 끊임없이 소프트파워를 불어넣으면 북한에도 아랍의 봄, 아니 평양의 봄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것은 멀리 있지 않다. 미국에서는 전문가들이 공해상의 비행기에서 기류를 이용해 북한에 전단지를 살포하거나 위성방송을 볼 수 있게 셋톱박스를 보급하는 방안까지 거론하더라. 한국보다 미국이 앞서있다는 느낌이었다.”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태영호 전 북한 영국공사가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뉴시스 김현호 상임고문(왼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1.20.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태영호 전 북한 영국공사가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국가안보전략연구원에서 뉴시스 김현호 상임고문(왼쪽)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7.11.20. [email protected]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북한은 최근 영화나 드라마를 거의 만들지 못하고 있다. 내가 한국서도 매일 북한 TV를 보는데 요즘 나오는 영화는 모두 10여 년 전에 만든 것이다. 예전에는 해마다 수십 편씩 만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 만들어봐야 주민들이 보지 않는다는 걸 작가나 제작자들이 잘 알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에 빠진 주민들이 체제선전 일색인 북한 영화를 보겠는가. 김정은이 만들라고 하면 한 두 편 만들기야 하겠지만 아무 효과가 없다.
총살을 시켜도 주민들이 몰래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걸 막을 수 없으니 북한 당국으로서는 다른 경쟁물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내놓는 게 구소련과 동구권, 중국의 옛날 영화들이다. 김정은이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필름 창고를 열어 수천 편중에서 재미있는 걸 골라 DVD로 만들어 보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유튜브를 보면 평양에 이런 DVD를 파는 매장이 여럿 있다. 그러나 대부분 전쟁물이나 애국심을 고취하는 옛날 사회주의 영화인데 이걸로 한국 드라마를 막아낼 수 있겠는가.”

 -대북 제재와 압박은 효과가 있다고 보나.

“제재 압박 때문에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랫동안 제재에 단련돼온 북한 경제가 당장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다. 때문에 국제적 대북 압박의 목표와 시한을 북한의 핵무기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를 차단하는 데 둔다면 그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압박의 목표는 더 근본적이고 더 장기적이어야 한다. 대북 압박은 궁극에는 북한체제의 변화 또는 소멸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도 그때 함께 해결될 것이다. 결국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인 것이다. 그러나 이때 레짐 체인지는 군사적 옵션이 아니라 정보 유입과 대북 압박으로 이루어내야 하고 충분히 가능하다.”

-대북 제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북한 체제의 변화나 소멸을 가져 오는가.

“예를 들어보자. 북한의 석탄 수출이 막히면 석탄은 내수로 돌아갈 것이다. 탄광 입장에서는 수출할 때는 국제시장 가격으로 받았지만, 내수가 되면 국정가격으로 다른 기관에 석탄을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가격은 국제 시장의 수백분의1 아니 수천분의 1이다. 국가 배급 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그걸로는 탄광 노동자들이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다. 탄광 지배인은 어떻게 하겠나.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상당량의 석탄을 장마당(농민시장)에 내다 팔거나 암거래를 할 것이다. 석탄은 장마당에서 국정 가격보다 수백 배 이상 비싸게 팔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내 암시장 수요는 중국보다 클 수가 없다. 종국에는 북한의 석탄 총생산이 줄어들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히 발전소, 화학공장 등 연관기업들도 생산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점은 외부의 제재와 압박이 지속되면 북한내부에서 대부분 물자는 장마당으로 모여들게 되고 시장경제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걸 정권이 끝내 막는다면 정권과 시장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북한 군에는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나. 
       
 “북한 경제의 최대 주체는 군이다. 군은 건설 현장을 비롯해 갖가지 생산 현장에 동원된다. 그런데 그들의 영양상태가 어떤지는 이번에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에서 귀순해온 북한 병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나. JSA에 배치된 병사는 북한에서 최고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도 수술받은 그의 위속에는 옥수수 몇 알이 전부고 기생충만 가득하지 않았나. 제재가 지속되면 북한은 결국 전시에 대비해 쌓아둔 군량미 창고를 열지 않을 수 없다. 그건 곧 전쟁을 포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하는 때가 오지 않겠나. 먹고 살아야 하니까.

“먹고 사는 것은 인민의 문제고, 김정은은 핵을 포기하는 순간 자신의 권력도 유지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 김정은은 2012년 권력을 승계한 뒤 ‘2015년을 조국통일의 대사변의 해로 만들자’고 선언하고 이때까지 전쟁준비를 끝내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군단장들을 데리고 전후방 부대들을 다 돌아 다녔다. 그런데 현실은 암담했다. 탱크나 장비들은 낡아빠졌고, 서류상 몇 만 톤 있다고 돼있는 석유 창고에 가보니 다 빼먹고 바닥나 있었다. 결국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가 해 오던 핵개발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후계 과정이 짧았던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도 북한사회 전체를 한 가지 목표로 몰아가야 했다.”  
 
-핵 개발이 내부 통치용이기도 하다는 뜻인가.

“2013년 북한이 경제와 핵 병진노선을 선언할 때 김정은이 밑에서 써준 보고서에 없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핵무기를 완성하는 길은 쉽지 않다. 미국과 중국 같은 대국들이 막으려고 별짓을 다할 것이다. 미국과 싸움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에 앞서 우리 내부 전쟁부터 일어날 수 있다. 핵무기를 만드는 건 우리 내부의 사상과 의지의 대결이다.’  그때 우리는 ‘내부의 누구하고 대결한다는 건가’ 의아해 했다. 그것은 숙청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은하수악단 8명을 처형하고 악단을 해산해버렸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가 이 악단출신이라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장성택 처형이었다. 당시 북한의 경제권은 장성택이 쥐고 있었다. 장성택이 부장으로 있던 노동당 행정부의 부부장과 과장 15명(공식 발표는 11명)이 모조리 총살당하고 그 아래로는 전 가족이 정치범수용소로 갔다. 김일성 김정일 때도 숙청은 있었지만 한부서 전체가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김정은은 핵개발을 내세워 권력을 확고히 한 것이다.”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는 북한 핵개발과 경수로 제공을 교환하는 내용이었다. 그 합의는 파기됐지만, 지금도 북한은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고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도 기본적으로 이런 기대에 바탕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네바 합의 당시 북한 전력공업성에서 외무성에 항의를 했다. 경수로만 지으면 뭣 하나, 송전선도 깔아 달라고 했어야지 하는 불만이었다. 외무성에서는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 합의는 시간벌기용 속임수라는 것을 외무성은 다 알고 있었지만 다른 부서에서는 몰랐던 것이다. 당시 북한은 국제적 감시와 압박을 피해 핵무기 제조용인 사용후 핵연료를 모으기 위해 시간을 벌 필요가 있었다. 북한은 단 한 번도 핵개발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협상은 시간벌기용일 뿐이었다. 이제 천신만고 끝에 핵무기를 완성했는데 보상을 받고 포기한다?  불가능한 이야기다.
2000년대 초반 영국 독일 등 많은 EU 국가들이 김대중 정부의 권유로 북한과 수교를 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끝내 거부했고 아직도 수교를 하지 않고 있다.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북한과 가까웠다. 오진우 고영희 등 북한의 요인들이 대부분 파리에서 치료를 받을 정도였다. 김정일도 북한 외무성에 프랑스와는 고개를 숙여서라도 수교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런데도 프랑스는 왜 북한과 수교하지 않았을까. 프랑스에 온 북한요인들과의 직간접 접촉을 통해 북한이 절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서방국가들중 북한에 대한 휴먼인포(인간정보)가 가장 많은 나라가 프랑스다. 지금 프랑스는 ‘보라, 우리 판단이 옳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북한 핵과 미사일이 미국에 노리는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주한 미군 철수다. 과거 베트남은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통해 월남에서 미군을 철수시켜 통일을 이루었다. 중국은 핵과 ICBM을 만들어 미국이 대만에서 손떼게 만들었다. 김일성은 한국에서 미군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방식을 함께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아시아 3대 사회주의 국가중 미군을 몰아내고 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나라는 북한뿐이라는 것이다. ‘전 조선반도의 주체사상화’는 북한 체제의 변할 수 없는 존재 이유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아무리 김정은이지만 그래도 같은 민족인 남쪽을 향해 핵무기를 쏘기야 하겠나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북한은 1980년대 말까지 대남 적화통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남조선에서 지하당 조직을 구축해 그들이 들고 일어나 인민민주정권을 세우고 이 과정에서 남조선 인민이 힘이 부족하면 우리가 내려가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남쪽의 인민들은 북쪽편인데 군부 독재가 이를 억누르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그래서 1968년에는  박정희만 제거하면 인민들이 봉기할 것이라고 보고 1.21 청와대 기습사건을 감행했다. 또 1980년 광주에서도 인민들은 친북정권을 세우고 싶어 하는데 군부 세력이 이를 탄압했다고 판단해 전두환 정권 제거를 위해 아웅산 테러를 일으킨 것이다.
그러나 90년대 들면서 북한은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화로 더 이상 인민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더 이상 한국 민중이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없는 세력임을 안 것이다. 그때부터 북한은 남쪽을 향해 ‘불바다’ ‘쓸어버리겠다’는 식의 언사를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적화통일을 하더라도 더 이상 남한 민중을 포용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 드라마를 보기만 한 북한주민도 처형해야 유지되는 체제인데 그런 드라마가 뼈 속까지 배인 한국 국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그러니 남쪽 동포를 향해 핵무기를 사용하는 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야말로 김정은에게는 철저한 파괴의 대상인 것이다.”

-김정은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가 할아버지 김일성의 스타일을 흉내내고 있지만, 정작 어릴 때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내놓지 못하고 있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1994년) 김정은이 열 살 정도였으니 그동안 사진 한 장 정도는 찍을 수 있지 않았겠나. 그러나 그는 어릴 때 자신의 존재를 할아버지 앞에 드러내지 못하는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 고영희가 김정일의 정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영희도 명절에 김일성에게 인사를 못가는 처지였다. 북한의 간부들도 김정은의 존재를 안 것은 후계로 지명되고 난 뒤였다. 이런 성장과정이 그의 성격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장성택을 그렇게 무자비하게 처형한 데에는 고모부인 그가 어릴 때 자신과 어머니를 김일성으로부터 떼어 놓았다는 사실에 한을 품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있다. 장성택은 처남인 김정일에게 (본처가 아닌) 고영희와 아들의 존재를 김일성이 알면 몹시 화를 낼 것이라며 그들의 존재를 숨기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성택은 김정은이 후계자가 되자 불안해했고 결국 변을 당했다.
 김정은의 성격이 매우 급하고 난폭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2015년 자라 공장(양식장) 지배인을 물 관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즉결 처형한 사실은 한국 언론에 보도된 그대로다. 그게 전기 부족 때문인데도 말이다.”

-김정은의 이런 성격이 대외 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가 걱정이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가야 하나.

“어떤 경우에라도 북한에 대한 소프트 파워 유입과 단호한 제재 압박은 지속해야 한다. 협상을 하고 지원을 하더라도 이 두 가지 축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 북한은 이제 핵 보유국 행세를 하면서 비핵화를 전제로 한 어떤 협상도 거부할 것이다. 미국과 핵 군축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핵무기 몇 개, 미사일 몇 개 줄이는 대신 평화협정이니 미군철수니 하나씩 내놓으라고 할 것이다. 미국과 한국은 비핵화를 목표로 하지 않는 협상에는 결코 나가서는 안 된다. 북한이 비핵화를 거부하면 인내심을 갖고 제재와 압박을 계속하면 된다. 북한 체제는 변하거나 아니면 소멸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시간은 우리쪽에 있다.”  <상임고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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