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IB 과제①]막강한 실탄 확보…기업 '돈맥경화' 뚫을까

기사등록 2017/11/14 16:14:52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문자
  • URL
associate_pic5

자기자본 2배까지 자금조달 가능…벤처·中企 자금줄 기대
발행어음 통한 자금조달 쉽지 않을 수도
한투證만 단기금융업 인가…4개사 인가 시기도 불투명

【서울=뉴시스】김형섭 기자 = 초대형 투자은행(IB)은 한국 경제의 젖줄이 될 수 있을까.

정부가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목표로 초대형 IB를 출범시킨 가운데 막강한 실탄을 보유하게 된 IB들이 당초 정책 목표대로 기업의 '돈맥경화'를 뚫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초대형 IB 도입은 정부가 지난 2011년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마련하면서 시작됐다. 증권사들도 기업금융에 진출토록 해 기업 활동을 위한 재원이 보다 다양하고 효율적으로 조달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는 2016년 초대형 IB 육성방안을 마련,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IB는 발행어음 업무를 통해 대규모 자금을 모아 기업 대출에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지난 13일 금융위원회가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등 5개 증권사에 대한 초대형 IB 지정안을 통과시켰다. 특히 한국투자증권에게는 단기금융업무(발행어음 허용)도 함께 인가해 주면서 초대형 IB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발행어음은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일반 투자자에게 발행하는 만기 1년 이하의 단기금융 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IB가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발행어음을 자기자본의 최대 2배까지 발행할 수 있다. 이렇게 모은 자금은 기업 대출이나 부동산 투자 등에 쓸 수 있다.

다만 자금모집이 쉽고 빠른 대신 최소 50%는 기업 금융에 써야 하며 부동산 투자에 쓸 수 있는 돈은 30%로 제한된다. 초대형 IB가 자체 어음 발행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그동안 은행권을 통한 자금조달에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겪어 와던 벤처나 중소기업에도 온기가 돌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초대형 IB로 지정된 5개 증권사의 자기자본 규모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미래에셋대우 7조1498억원, NH투자증권 4조6924억원, 한국투자증권 4조3449억원, 삼성증권 4조2232억원, KB증권 4조2162억원 등이다.

이번에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은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자기자본의 두배인 8조7000억원까지 어음 발행이 가능하다. 이 중 최소 50%인 4조3500억원은 기업 대출이나 어음할인, 저신용 기업의 회사채 인수, 기업자금 지원을 위한 주식 투자 등의 기업금융에 투입된다.

실제 한국투자증권은 "혁신기업에 모험자본을 적극 공급함으로써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하겠다"며 의욕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는 기업의) '돈맥경화'를 조금 뚫어주는데 작은 역할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금융시장에서 돈맥경화의 빈틈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향후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까지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으면 발행어음을 통해 49조2000억원대의 자금조달이 가능하며 이 중 최소 24조6000억원은 기업금융에 쓰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1년 만기 발행어음의 금리가 2% 수준만 돼도 은행 예금보다 높아 많은 자금조달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 돈을 통해 기존에 은행들이 외면한 벤처나 중소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이 개선될 것"이라며 "초대형 IB들에게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문의가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증권 등 금융투자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금투협은 초대형 IB 5개사가 제조·건설·서비스업종의 기업금융에 24조6000억원을 풀면 21만~43만명의 일자리창출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제시했다.
associate_pic4【서울=뉴시스】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13일 서울 여의도 본사 5층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제1호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인가 받은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유 사장은 이날 "업계 최고 수준의 투자은행(IB) 역량을 활용해 한국판 '골드만삭스' 모범 모델을 시장에 안착시키겠다"고 말했다. (제공 = 한국투자증권)

그러나 초대형 IB가 당장 벤처·중소기업의 젖줄로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많다. 출범 초기에는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안정성과 손실 최소화에 초점을 맞춰 기업 대출을 실행할 가능성이 높고 현재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아 투자대상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 해보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에 제도가 정착하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당장은 리스크 등을 감안해 증권사가 단기 대출이나 부동산 투자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행어음 업무로 8조7000억원까지 조달이 가능한 한국투자증권만 해도 일단 연내 자금조달 목표는 최대 1조원 정도로만 잡았으며 내년 4조원, 2019년 6조원, 2020년 8조원 등으로 천천히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금리가 파격적으로 높은 것도 아닌데다 예금자 보호도 안되는 단기어음의 매력도가 높지 않아 초대형 IB의 자금조달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원재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발행어음이 원금보장 상품이 아니고 최근 인터넷 전문은행 및 시중은행의 예금금리 인상으로 발행어음 금리를 매력적인 수준으로 제시하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한국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4개사에 대한 단기금융업 인가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지 못해도 초대형 IB로 지정되면 기업을 상대로 한 외국환 업무 등은 할 수 있다. 그러나 단기어음 발행을 통한 자금조달이 어려운 만큼 기업금융의 마중물 역할은 쪼그라들 수 밖에 없다.

삼성증권은 대주주 적격성, 미래에셋대우는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 심의, NH투자증권은 막대한 채무보증, KB증권은 합병전 제재 전력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당국은 4개사에 대해 심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심의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지만 시기를 특정하지 않고 있어서 내년에야 심사가 끝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ephites@newsis.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