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9차 당 대회]최고지도부 인사 불문율···'집단지도 체제' '7상8하' '70세 정년'

기사등록 2017/10/13 00:01:00

중국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 올해 69세인 왕 서기가 오는 18일 개막하는 제19차 당 대회에서 상무위원에 유임할지는 '7상8하' 정치 관례의 타파와 관련해 큰 관심을 부르고 있다.
중국 시진핑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왕치산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 올해 69세인 왕 서기가 오는 18일 개막하는 제19차 당 대회에서 상무위원에 유임할지는 '7상8하' 정치 관례의 타파와 관련해 큰 관심을 부르고 있다.

【서울=뉴시스】이재준 기자 = 오는 18일 개막하는 중국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19大)에서는 새로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제19기 중앙위원회는 당 대회 폐막 직후 제1차 전체회의(1중전회)를 열고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 위원과 상무위원을 선출한다.

서방을 비롯한 대다수 민주체제 국가는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고 임기가 끝나면 재선되지 않을 경우 그대로 물러나기에 권력승계 문제를 둘러싸고 복잡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당독재를 채택하는 중국에서는 불투명한 권력이양 틀로 인해 정치후계 문제는 매번 체제 불안정의 요인이 되면서 극도로 민감하고 엄중한 사안으로 작용했다.

공산정권 수립을 주도한 제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은 자신이 후계자로 세운 린뱌오(林彪)와 류사오치(劉少奇)를 차례로 숙정했다. 노쇠한 마오쩌둥이 사망하기 얼마 전에 계승자로 낙점한 화궈펑(華國鋒)은 1976년 '궁정 쿠데타'로 실제 권력을 장악한 문혁 4인방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하지만 화궈펑은 제2세대 실력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의 막강한 군부와 정치 영향력에 밀려났으며 결국 1978년 말 중국은 덩샤오핑 시대에 들어섰다.

마오쩌둥의 1인체제 폐해를 누구보다 절감한 덩샤오핑은 집권기간 내내 후계자 문제에 고심했다. 그러나 덩샤오핑도 민주화 시위인 제1차, 2차 톈안먼 사건을 계기로 후계자이던 개혁 성향의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을 자신의 손으로 내쫓을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상하이 당서기로 있는 장쩌민(江澤民)을 후계자로 정한 덩샤오핑은 후계 선정 작업의 안정화를 기할 생각으로 '집단지도체제(集體領導)'와 '차차기 후계자 지정(隔代指定接班)'이라는 장치를 마련했다.

당장이나 헌법 등에 명기해 법적 구속력을 갖지 않는 이들 '정치 관례'의 목적은 마오쩌둥 시대의 과도한 권력 집중을 피하는데 두었다.

집단지도체제는 총서기가 독보적인 권련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중대한 결정을 정치국 상무위원이 공동으로 중지를 모아 내리게 했다.중요한 사안을 확정할 때는 총서기를 포함하는 정치국 상무위원이 각자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해 다수가결을 원칙으로 했다.

차차기 후계자 지정의 관례에 따라 덩샤오핑은 후진타오(胡錦濤)를 장쩌민의 승계자로 뽑았다.제3세대 지도자 장쩌민도 후진타오의 뒤를 이을 총서기로 시진핑(習近平)을 일찌감치 점찍었다.이에 따라 2012년 시진핑은 제18차 당 대회에서 제4세대 지도자 후진타오를 승계해 제5세대 지도자에 올랐다.

덩샤오핑이 물러나고서 전권을 한 손에 틀어쥔 장쩌민 역시 나름의 정치 관례를 강구했다. 바로 '70세 정년(七十歲劃線)'과 '7상8하(七上八下)'였다.

다만 덩샤오핑과는 달리 장쩌민은 이들 정치 관례를 권력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정략 차원에서 만들었다. 그래도 두 관례는 지난 20년 동안 유지되면서 중국 지도부 개편의 주요 기준이자 원칙이 됐다.

70세 정년은 정치국 상무위원이 70세를 넘으면 연임을 모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7년 제15차 당 대회 때 당력이나 신망으로 보나 장쩌민을 앞선 당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 차오스(喬石)이 70세 정년에 걸려 퇴진했다.

67세면 정치국 상무위원이 될 수 있고 68세면 되지 못한다는 7상8하는 전국정협 주석 리루이환(李瑞環)을 겨냥한 것이다. 2002년 제16차 당 대회에서 후진타오 지도부가 출범하면 물러나야 하는 장쩌민은 막후에서 계속 고위층 인사를 장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최대 견제 세력인 리루이환을 밀어내려고 이런 관례를 끌어냈다. 그때 68세인 리루이환은 지도부 안정을 우선한다는 심정에서 7상8하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깨끗이 상무위원직을 내놓았다.

덩샤오핑 이래 나온 지도부 인선 관례들은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를 거쳐 20년 넘게 운영되면서 총서기와 총리의 투톱 후계 방식으로 확대 발전했다.

제4세대의 후진타오 총서기-원자바오(溫家寶) 총리, 제5세대의 시진핑 총서기-리커창 총리 체제가 이런 식으로 출범했다.후진타오는 1992년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입성해 10년간 대권 수업을 거치고서 2002년 총서기에 취임했다.시진핑도 2007년 제17차 당 대회 때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입해 5년간 집중적인 후계자 준비 기간을 지낸 후 2012년 총서기에 등극했다.

차기 투톱이 되려면 먼저 최소한 전기 당 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선출돼야 한다. 2012년 18차 당 대회 때 40대인 후춘화(胡春華) 현 광둥성 서기와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시 당서기가 정치국 위원에 뽑히면서 제6세대 지도자 유력 후보군이 됐다.

후진타오가 격대 후계자 지정권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지만 쑨정차이가 지난 7월 비리 혐의로 낙마하면서 중대 변수가 생겼다.

쑨정차이의 투톱 자리에는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인 천민얼(陳敏爾·57) 충칭시 당서기가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하다.

다만 일각에서는 1인체제를 구축해 2022년까지 2기 10년의 임기 후에도 최고지도자로 남으려는 시진핑이 19차 당 대회에서 후계자들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는 시진핑 권력기반 확대의 최고 공헌자인 왕치산(王岐山·69)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겸 정치국 상무위원이 '7상8하' 관례를 깨고 유임할지 여부와 함께 이번 당 대회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할 대목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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