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민·엄재용 "행복했고 후회없다"···은퇴회견 '눈물 바다'

기사등록 2017/10/12 16:03:13

【서울=뉴시스】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15년 발레단 생활을 돌아보니 저는 참 행복했던 무용수였던 것 같아요. 화려한 무대에 설 수 있는 특별한 사람이었으니까요. 동시에 자신이 안쓰럽기도 했어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듯 쑤시는 것이 당연한 일상이었고, 화려한 무대에 서기 위한 자신과의 싸움은 언제나 고독했기 때문이지요."

12일 오전 정동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직접 손글씨로 써온 고별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황혜민(39)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

황혜민은 "발레는 다른 예술과 달리 오로지 인간의 몸으로만 감동의 예술을 전해야해 항상 어려운 과제"라면서 "분명 제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어떤 날은 내 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 없이 작아지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큰 행운이 따랐다고 했다. 이번에 함께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은퇴하는 남편 엄재용(38)과 가족 그리고 문훈숙 단장을 비롯한 유니버설발레단 스태프들과 동료, 그리고 팬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황혜민이 '누구보다 행복한 발레리나'였다고 마침표를 찍자 문훈숙 단장을 비롯해 이를 지켜보던 스태프들도 눈시울을 붉혀 현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황혜민과 엄재용 부부는 오는 11월 24일~2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는 유니버설발레단의 드라마 발레 '오네긴'을 통해 고별무대를 갖는다. 이후 황혜민은 무대를 완전히 떠나며, 엄재용은 유니버설발레단 공연만 내려놓고 다른 소규모 공연과 일본 활동 등은 이어간다.

【서울=뉴시스】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mail protected]
한국 발레계의 간판스타인 황혜민과 엄재용은 한국 발레사와 그 발전을 함께 견인해온 무용수들로 평가 받는다. 각각 2002년과 2000년에 유니버설발레단으로 입단한 두 사람은 국내외에서 주역 파트너로서 1000회가 넘는 무대에서 호흡을 맞췄다.

선화예술중∙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로 학창시절 서로의 첫 사랑이기도 한 이들은 프로무대에서 재회, 동료에서 연인으로 2012년 8월 부부의 연을 맺으며 '최초의 현역 수석무용수 부부'가 됐다. 이와 함께 타티아나와 오네긴 역을 맡아 '오네긴'이라는 같은 무대로 유니버설발레단을 떠나는 기록도 쓰게 됐다.

여전히 전성기를 누리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두 사람, 특히 황혜민의 은퇴는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문훈숙 단장은 "은퇴는 삶 전체가 바뀌는 힘든 시기"라면서 "두렵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이죠. 두 번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혜민은 "지금 이 시점이 은퇴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체적인 능력이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은퇴하기는 싫었어요. 최고에 있을 때 은퇴를 하고 싶었죠. 충분히 원하는 만큼 다 했고 그래서 후회가 없을 거 같다"는 것이다.

"관객들이 보시면서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나'라고 말씀을 하실 때 내려오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고,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내려오고 싶었어요. 그래서 재용 씨와 유니버설발레단을 은퇴하는 거죠. 사실 무용수들이 40대 전후로 은퇴를 해요. 제가 그 정도 나이가 됐고요. 그리고 후배들을 위해서도 수석 자리를 내려놓고 싶었어요."

【서울=뉴시스】 황혜민·엄재용,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황혜민·엄재용,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mail protected]
황혜민의 은퇴 이유는 좀 더 복합적인 이유들이 합쳐졌다. 또 다른 개인적 행복을 찾아가는 의미도 있다. 무용수가 아닌 좀 더 여성으로서 삶의 고민이다. 예를 들어 엄재용과 사이에서 2세를 갖는 것이다.

황혜민과 또래의 절친한 무용수들이자 여전히 활발하게 현역으로 활동하는 스페인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 김세연,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출신 스타 발레리나 김주원은 초반에 황혜민의 은퇴 결심을 알았을 때 말렸다고 했다. 하지만 황혜민의 입장을 충분히 들은 뒤 수긍했고 지금은 응원하고 있다.

"이미 제가 나이가 들어서 늦은 감이 있어요. 마흔에는 아이를 나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만약 10년 전이었다면 아기를 낳고 돌아왔을 거예요. 하지만 중간에 아기를 갖기 위해 발레를 놓아야 했다며 후회했을 겁니다. 지금이 적기죠."

앞으로 무대 활동을 이어갈 엄재용 역시 마흔 즈음에 무용수로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황혜민이 현역 무용수로 활동하며 큰 부상이 없었던 반면 엄재용은 큰 부상을 세 번이라 입었다. 20대 초반과 중반, 30대 초반으로 발목 수술 한번, 무릎 수술 두 번을 치러냈다.

엄재용은 "20대 초반에는 회복 속도가 빨랐는데 30대에는 재활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면서 "여러 고비에도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관객들 덕분이에요. 좋은 공연을 끝내고 관객으로부터 받는 희열 때문에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황혜민·엄재용,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황혜민·엄재용,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mail protected]
황혜민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한 '오네긴'을 은퇴작으로 선정한 것에 대해 엄재용은 " '오네긴'은 한편의 영화처럼 모든 걸 연기적으로 끌고 나가는 힘이 있어요. 연기력, 경험, 관록을 보여줄 수 있어 은퇴작으로 정했다"고 전했다.
 
황혜민과 엄재용이 처음 호흡을 맞춘 건, 프랑스 파리의 상젤리제 극장에서 열렸던 '2002 파리 21세기 에투왈 갈라' 프로그램에서였다.

전막 공연으로 커플 신고식은 인도 왕궁을 배경으로 무희 니키아와 전사 솔로르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 '라 바야데르' 2004년 공연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백조의 호수', '돈키호테', '잠자는 숲속의 미녀', '지젤', '호두까기인형' '로미오와 줄리엣', '심청' 등 발레단이 보유한 모든 레퍼토리에서 주역 파트너로 활약했다.

【서울=뉴시스】 문훈숙·황혜민·엄재용.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문훈숙·황혜민·엄재용. 2017.10.12. (사진 = 유니버설발레단 제공) [email protected]
무대와 일상을 계속 나눠온 두 사람에게 서로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황혜민은 엄재용이 "온리 원"의 존재라고 했고, 엄재용은 "존중, 배려, 신뢰가 쌓인 파트너"라고 했다.

은퇴 이후 삶의 계획은 일찌감치 짜 놓았다. '지젤'의 타이틀롤 등 캐릭터를 위해 30년 동안 어깨 밑으로 처지는 머리모양을 해온 황혜민은 26일 '오네긴' 공연을 끝내고 다음 날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자른 뒤 탈색을 하고 싶다고 웃었다. 친구들과 한가롭게 평일 낮에 브런치도 즐기고 싶다고 소박한 소망을 보탰다. 맛집에 가는 걸 좋아한다는 엄재용은 제주에서부터 맛집들을 하나씩 돌며 서울로 올라오고 싶다고 했다.

그럼에도 발레계에서 이들의 존재감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황혜민에게는 발레는 인생 그 자체, 엄재용에게는 숨이었기 때문에 관객들도 두 사람을 쉽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황혜민은 "저희 커플을 감동을 주는 무용수로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엄재용은 "불현듯 어느 작품을 보셨을 때 머리 한 구석에라도 저희를 떠올려주셨으면 한다"고 했다.

◇황혜민과 엄재용이 뽑은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와 팬

▲황혜민 "갓 입단했을 때인 2003년 '지젤'이 가장 생각나요. 문훈숙 단장님하고 리허설으 f했던 기억이요. 1막의 드라마 하나하나를 가르쳐주셨는데 특히 남자 무용수의 눈을 쳐다보는 방법을 알려주셨죠. 제가 부끄러워서 못 쳐다보니까, 눈동자 색깔을 보라고 해주셨거든요. 흰색, 파란색, 초록색 눈을 마주하고 색깔을 확인하라고 하셨죠.(웃음) 2010년 '돈키호테' 때 엄재용 씨가 부상을 입어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처음 호흡을 맞췄는데 연습에서 턴을 돌다가 제 팔꿈치로 콘스탄틴의 코뼈를 부러드린 것도 입지 못하죠. 그 다음부터 콘스탄틴이 저와 춤을 출 때 거리를 두고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팬은 발레를 하는 딸을 둔 대전에 사시는 어머니에요. 항상 기차를 타고 공연을 보러 오세요. 유니버설발레단 대전 공연, (황혜민이 출연한) 뮤지컬 '팬텀'의 대전 공연 때는 대전에서 유명한 튀김 소보로 빵을 모든 스태프에게 선물로 주셨어요."

▲엄재용 "입단 초반 미국 투어에서 '심청'을 공연했는데 용왕으로 출연했어요. 문훈숙 단장님이 마지막 심청이었고, 저는 '심청' 데뷔 무대였는데 하늘 같은 선배 그리고 단장님이라 크게 떨었던 기억이 있어요. 단장님과 전막 발레에 함께 출연하지 못한 건 정말 아쉬워요. '심청'은 막마다 주인공이 정해져 있어 전막이 아니었거든요. 주역 무용수들이 해외에 진출하고 부상을 당해 지방 공연을 할 때 3주간 토일 세차례 공연을 다른 파트너와 함께 제가 혼자 소화했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팬은 발레 '호두까기 인형'을 보러 온 어린 친구에요. 어느날 라디오를 들었는데 집안 형편이 좋지 않지만 아들이 '호두까기 인형'을 좋아해 엄마가 돈을 모아서 표를 샀다는 얘기였어요. 근데 15:00 공연을 오후 5시로 공연으로 잘못 아셔서 못 본 모자의 사연이었죠. 방송국에 전화해 모자를 초대했어요. 아이가 색종이에 쓴 감사편지와 함께 호두과자를 선물로 준 기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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