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 연희단거리패의 '황홀한 폐허'…'변두리극장'

기사등록 2017/03/27 18:12:58

최종수정 2017/03/27 18:12:59

【서울=뉴시스】연극 '변두리극장'. 2017.03.27 (사진 = 극단 연희단거리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연극 '변두리극장'. 2017.03.27 (사진 = 극단 연희단거리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80석 규모의 게릴라극장은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전진기지다. 부산에 본거지를 둔 이 극단이 서울에서 활동할 수 있게끔 만든 벙커였다. 상업시설이 뒤섞여 있는 대학로 중심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는 변두리극장이기도 하다.  

 전방위 극장가 칼 발렌틴은(1882~1948)의 단막극을 모은 연극 '변두리극장'을 공연하기에 덧없는 장소다.

 배우들의 익살과 너스레, 재기가 넘치는 이 광대극은 6년 만에 다시 올라 대학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달 3일 막을 올라 26일 공연까지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마지막 공연날인 26일 오후 3시 공연 외에 오후 7시 공연을 추가했는데 역시 단숨에 티켓이 모두 팔려나갔다.

 일종의 카바레트 드라마다. 언어유희, 슬랩스틱 등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오늘날 개그와는 다른 민중소극이다.

 그 안에 촌철살인의 사회비판과 철학적인 주제를 담았다. 게릴라식 촌극양식이니, 게릴라극장은 이 공연을 올리기에 최적이다.

associate_pic2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연극 '변두리극장' 커튼콜 이후. 2017.03.27  [email protected] 
 극중극 식으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는데 하나같이 어수선한 시국에 비수를 꽂는다.

 납품 회사에 전화를 건 제본공은 '전화 뺑뺑이'가 곤혹스럽지만 을인 그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악보가 잘못됐다는 단원들의 지적에도 지휘자는 그대로 연주하라며 막무가내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라는 말을 "쉬자"라고 알아듣는 단원들의 나태함도 만만치 않다.

 새가 없는 새장을 가지고 온 새 장수, 아들의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해 편지에 결국 아들이라고 적는 부부도 이 시대의 반영이다.  

 광대로 분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에피소드는 변두리극장의 볼 품 없는 이야기인 듯하지만, 내용은 가장자리가 아닌 원심력으로 중심부를 파고든다.

associate_pic2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폐관 앞둔 혜화동 '게릴라극장' . 2017.03.27  [email protected]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스프링으로 된 포디엄에 올라 깡충거리는 지휘자의 지휘로 단원들이 첼로, 색소폰, 건반 등을 무지막지하게 연주하는 장면에서 결국 극장이 무너진다. 천장에서 억장이 무너져 마음이 불탄 이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시커먼 벽돌이 마구 쏟아지고 배우들도 순식간에 쓰러진다.

 연희단거리패 2대 햄릿이자 배우장으로 지휘자 역을 맡아 종횡무진한 이승헌, 무대 위 '옴 파탈' 배우이나 이날 능청스러움을 보여준 윤정섭 등 배우들의 에너지도 상당했다.  

 마지막 회차인 26일 오후 7시 공연에서 배우들과 공연 분위기의 우악스러움은 한결 더했다. 러닝타임 내내 광대들의 소극에 웃음 짓던 관객들은 극장이 무너지자, 머쓱 또는 허무해진다. 황홀한 폐허가 이런 것인가. 마지막이 돼서야 무대 뒤 벽에 적힌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극을 쓴 발렌틴에게 영향을 준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만든 표현주의 영화(1932)의 제목으로 오동식 연출이 떠올렸다. '쿨레 밤페 ;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Kuhle Wampe oder; Wem gehort die Welt)?'. 당신은 자신의 인생의 주인인가라고 묻는 듯했다.

 이윤택 예술감독이 이끈 게릴라극장은 '변두리극장' 후속으로 오는 30일 개막해 내달 16일 폐막하는 김소현·명계남 주연의 '황혼'(연출 채윤일) 종연과 함께 폐관된다. 재정난 때문이다. 이런 수작을 볼 수 있는 극장이자 10여년간 대학로 변두리의 상징으로 통한 게릴라극장의 운명을 연상케 하는 '변두리극장' 속 극장이 무너지는 장면이 다시 가슴을 때린다.

 [email protected]
button by close ad
button by close ad

[리뷰] 아~ 연희단거리패의 '황홀한 폐허'…'변두리극장'

기사등록 2017/03/27 18:12:58 최초수정 2017/03/27 18:12:59

이시간 뉴스

많이 본 기사

기사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