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공사 설계·감리비용이 법정 수준의 절반에 불과하다는 점도 사고를 키우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건설현장 안전사고는 2006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까지 10년간 총 22만554명의 재해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건설사고 유형 중 추락사고가 가장 빈번했다. 지난해 총 2만5132명의 재해자 중 8259명이 추락사고를 당했다. 발생 빈도는 10년 전(5942명)보다 30% 가까이 늘었다.
사고현장에 가면 안전난간이나 발끝막이판이 없는 경우를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근로자들이 추락방지 안전띠 고리를 걸지 않고 작업하다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사업주의 안전의식 미흡, 근로자의 안전수칙 미준수, 감독당국의 안전관리 소홀 등 복합적인 요인이 더해진 결과다.
한국시설안전공단 '건설안전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사고발생 원인(2001~2016년)을 보면 '부적절한 작업절차에 의한 공사 운용' 12.3%, '안전규정 또는 지침 위반' 11.4%, '부적절한 작업계획' 10.7%, '적당하지 않은 지반 및 지하상태' 6%, '작업자 독단에 의한 불안전 행동' 5% 등 순으로 많았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토부의 안전관리체계는 시공과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정부는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토부의 건설현장 사전 예방형 안전관리체계에 따르면, 건설공사 참여자는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를 발주청 및 허가기관에 즉시 보고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국토부는 건설안전정보시스템에 '건설사고 신고 시스템'을 구축해 건설공사 참여자가 쉽게 사고를 보고할 수 있도록 했다. 사고를 발주청이나 인·허가기관에 신고하지 않을 경우, 최대 3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하지만 전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건설사고 신고 시스템 구축 이후 건설사고 현황'을 보면 현재까지 총 38건(사망 10명·부상 38명)의 신고가 접수됐다. 매년 건설사고로 2만여 명의 재해자가 발생하고 있음을 볼 때, 턱없이 부족한 신고 기록이다.
시스템에 등록된 사망사고는 ▲청주 사창동 산부인과 증축공사(사망 1명) ▲남양주 진접선 복선전철 제4공구 건설공사(사망 4명) ▲봉황천 지방하천 정비사업(사망 1명) ▲음성군 하수관로 3차 정비사업 시설공사(사망 1명) ▲서울 서초동 건물 지상·지하층 철거공사(사망 1명) ▲김포도시철도 1공구 공사(사망 1명) ▲세종시 2-1 생활권 공동주택 신축공사(사망 1명) 등 7건 뿐이다.
전국건설노동조합 관계자는 "산재신청을 하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이 어렵게 된다"며 "사측의 회유로 하청업체 직원이나 일용직 근로자들이 개인 의료보험이나 공상처리하는 경우는 여전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부실공사와 안전사고로 인해 건설노동자가 사망하는 비율이 OECD 국가 중 1위다. 이는 정부가 공공공사 예산을 책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적정 감리대가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한 몫한다.
기획재정부가 정한 건설사업관리(감리) 대가 요율은 (800억 공사기준) 약 4.2%다. 이는 국토부가 정한 적정감리대가(6.2%)의 68% 수준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공공기관들의 건설공사 설계·감리비용은 법이 정한 설계비의 절반 수준만 지급되고 있었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실이 2010년 이후 200억 이상 사업의 설계비용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공공기관들의 감리비는 공사비용(설계가)의 3.5% 수준으로 국토부가 정한 법정 요율 6.2%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건설 사업이 많은 LH공사(4.0%), 한국철도시설공단(3.7%), 한국도로공사(3.6%), 서울시(2.7%), 경기도(2.6%) 등 5개 기관의 감리비용은 양질의 건설사업(공사감리)를 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다.
설계비도 법정 요율에 한참 못미쳤다. 우리나라 법정 설계비 요율은 4.2%로 프랑스(8%), 미국(6%) 등 선진국에 비해 한참 낮음에도 불구하고 2.4%만 지급되고 있었다.
정 의원은 "감리가 사실상 눈 뜬 장님이 돼 버려 공사를 하던 중 슬라브 등이 붕괴되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부실과 안전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건축물의 성능 저하 및 수명 단축 등 감리 부실로 인한 폐해가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충분한 설계비용은 부실시공으로 인한 붕괴 등 안전사고 유발로 이어진다"며 "남양주 지하철 공사장, 칠산대교 붕괴사고 등 여전히 후진국형 안전사고가 발생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그러면서 "적정 감리비와 설계비·설계기간 등을 확보해 부실한 설계가 발붙일 수 없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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