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100만명 이상 0편' 로맨스 영화 멸종 위기…왜?

기사등록 2016/11/01 21:45:52

최종수정 2016/12/28 17:48:44

【서울=뉴시스】손정빈 기자 = 로맨스 영화가 사라지고 있다. 1990년대 말 '접속' '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시작으로 2000년 초반 '번지점프를 하다' '클래식' '너는 내 운명' 등으로 부흥기를 맞고, 2000년대 중반까지 한국영화의 중심에 서있던 로맨스·멜로영화가 최근 점차 쪼그라들더니 이제는 아예 자취를 감추고 있다.

 단적인 예로 올해 국내 개봉 한국영화 중 관객 100만명 이상 불러모은 작품 41편 중(10월19일 현재·영화진흥위원회) 로맨스물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은 단 한 편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흥행 면에서 실패를 작품성으로 만회한 작품도 없었다. 한국영화가 범죄·액션·스릴러 장르로의 편향이 점차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올해만 나타난 특이 케이스로 분류할 수는 없다는 건 단순 통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근 5년간(2011~2015) 국내 개봉 영화 중100만명 이상 본 작품은 189편, 이중 넓게 분류해 로맨스물에 속하는 작품은 17편으로 8.9%에 불과하다. 한국 로맨스 영화가 이른바 멸종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장기적으로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품은 많이 드는데, 돈이 안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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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허진호도 만들기 어려워요." 한 제작사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최소한 손해는 안 봐야 될 것 아니냐. 로맨스영화는 아무리 흥행이 잘 돼도 중박, 웬만하면 쪽박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맨스영화를 누가 만드나. 정우성·김하늘이 나와도 안 되는 게 현재 한국 로맨스 영화"라고 말했다.

 톱스타 정우성·김하늘이 출연한 '나를 잊지 말아요'의 최종 관객은 42만명이다. 또 다른 톱스타 전도연과 공유가 호흡을 맞춘 '남과 여'는 20만명이 보는 데 그쳤다. 대세 배우 유아인이 출연한 '좋아해줘'의 최종 관객도 84만명이다. 유연석·문채원의 '그날의 분위기'는 65만명에서 더이상 관객이 찾지 않았다. 이 작품들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

 현재 한국 로맨스 영화의 가장 큰 딜레마는 노력 대비 저조한 성과다. 범죄·액션·스릴러 장르보다는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가지만, 제작·연출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은 다른 장르 영화 못지않다. 똑같은 노력이라면 오히려 돈이 되는 장르 영화를 만드는 게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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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제작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 "요새 로맨스 영화 찍으면서 아무 데서나 촬영할 수 있나. 외국에 한 번 다녀와야 하고, 촬영 장소도 멋져야 하고, 각종 소품 디테일 최대한 예쁘게 만들어야 하고, 톱배우들 캐스팅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될까말까다. 굳이 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좋은 시나리오가 나올리 없고, 이에 따라 투자도 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분석이다.

 ◇영화 관람료는 비싸지는데, TV로 봐도 되는 로맨스를…

 가장 많은 관객이 극장을 찾는 주말, 영화 관람료는 1만원 이상이다. 영화가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화생활 중 하나라는 건 변하지 않았지만, 더는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만큼 관객도 최대한 돈이 아깝지 않은 작품을 고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로맨스 영화가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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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집에서 TV를 보는 것과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의 간극이 예전보다 더 벌어지고 있다. 영화를 본다는 건 진짜 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돈을 내고 큰 화면으로 보기에 로맨스 영화는 심심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이를 극장의 '놀이공원화'로 설명했다. 극장이 멀티플렉스화 되면서 단순히 영화만 보고 나오는 것이 아닌 다양한 오락을 즐기고, 쇼핑까지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는데, 그런 점에서 놀이공원의 스펙터클을 로맨스 영화가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정 평론가는 "극장이 놀이공원이 되는 현상은 영화만이 줄 수 있는 경험을 향유하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며 "로맨스영화가 새로운 동력을 만들지 못하는 한 영화의 장르 편향은 앞으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로맨스 드라마는 제2의 전성기인데…영화는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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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TV 드라마는 전통적인 로맨스물이 대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시도의 장르 드라마가 주목 받았지만, 김수현·이민호·송중기·박보검 등 스타들이 탄생하면서 다시 로맨스물에 대한 시청자의 관심이 불붙고 있다. 최근 종영한 '구르미 그린 달빛'을 비롯해 현재 지상파 3사의 월화·수목 미니시리즈는 모두 로맨스물로 채워져 있다.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캐리어를 끄는 여자' '공항 가는 길' '쇼핑왕 루이' '질투의 화신' '우리 집에 사는 남자' 등은 모두 로맨스물이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TV 드라마의 로맨스 장르는 몇 년간 부침을 겪으며 진화를 거듭해 왔는데, 한국 로맨스 영화는 더이상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영화계가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고, 작품성에서도 TV 드라마가 영화에 뒤질 게 없으며, 더 재밌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tvN의 '또 오해영' 같은 드라마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기반을 두면서도 '주체적인 여성'이라는 코드를 활용해 시청자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문원 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영화에도 이런 시도가 분명히 있었다.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 '초식남' 코드를 로맨스 장르 안으로 불러들였고, '연애의 목적' 또한 능동적인 여성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인 작품이었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또 "음악 요소가 강하기는 하지만 '미녀는 괴로워'는 외모지상주의를, '1번가의 기적'은 로맨스와 철거민 이야기를 결합했다. 하지만 최근 로맨스 영화에는 새로운 시도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 영화 관계자는 "한국 관객이 로맨스 장르를 더는 보지 않는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 관객은 좋은 영화가 있으면 찾아오는 법이다. 좋은 작품이 있으면 배우가 따라붙고, 또 투자도 잘 된다. 한국 로맨스 영화 또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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